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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숨진 전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 사진=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
당정이 ‘오요안나법’ 제정 방침을 정했습니다. 중대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1회 발생만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요.
최근 ‘직장갑질119’가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직장인 3명 중 1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괴롭힘을 겪은 이들에게 괴롭힘 수준을 물어본 결과, 심각하다는 응답률은 작년 1분기 46.6%에서 54.0%로 늘었습니다. 괴롭힘으로 자해나 죽음을 고민한 적 있는지를 물어본 결과 ‘있다’는 응답은 22.8%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기간 7.1%포인트 증가한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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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과 심각성이 증가한 가운데, 오요안나법 추진에 따른 누리꾼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1회만으로도 엄벌해야 안 그런다. 그냥 내버려두니 험한 꼴만 생기고 서로서로 폭언 폭행 심해진다”며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반응도 있는가 하면, “갑질도 많지만 요새는 을질도 많고, 갑질이라며 무고하는 경우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대부분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정할 수 있나?”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게 이게 진짜 어렵다 언어폭력을 매 순간 녹음할 수도 없을 테고” “이 법이 공포가 된다 해도 실효성은 없을 듯. 법이라는 건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효력이다. 그 객관성을 사람관계에서 어떻게 따질 수 있나”라며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 기준은 무엇일까요? 우선 근로기준법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충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으며, 물리적 다툼 등으로 발전할 시에 민형사 소송이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 연구소 교수는 오요안나법 제정과 관련해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리는 판단은 안 된다. 상호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기업의 문화 속에서 배태가 되고, 기업이 그것을 방지하는 노력을 제대로 못 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사안”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게 명료하게 판단하기 쉽지 않다. 굉장히 주관적인 성격도 갖고 있고, 반복성과 강도 등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일률적으로 판단 내리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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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내 괴롭힘 자료화면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눈여겨 볼 부분은 ‘1회’라는 횟수입니다. 중대한 괴롭힘의 경우 단 한 번의 사례만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건데요.
김 교수는 “너무 즉흥적”이라며 “‘실효성이 과연 있느냐, 바람직한가’라는 측면에서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비정규직에게 고충처리 기재는 그림의 떡”이라며 “가해자를 지목하고 판단을 하는 구도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직 플랫폼에게 적용이 잘 안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해 법망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고 오요안나 씨 또한 MBC 보도국 소속의 프리랜서였습니다. 사건의 본질 또한 부조리한 고용구조가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지난 2022년 방송통신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지상파 13곳의 비정규직 구성은 9,199명에 달합니다. 2021년 신규 충원한 방송 제작 인력의 10명 중 6명(64%)가 비정규직인 겁니다.
날이 갈수록 비정규직 수는 증가하고, 왜곡된 고용 구조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요.
김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포괄적 적용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넓은 의미에서 산업안전 관련 규정이라고 보면,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대상이 돼야 한다. 하청, 비정규직에게도 적용되는 조항”이라며 “직원 여부를 따지지 말고 그 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원청 사업자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등 사실관계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포괄적으로 산업안전과 관련된 법률에 따르면 포괄이 가능하다”며 “직장 내 괴롭힘에 명확하게 정리돼 있지 않다고 해서 대상이 아니라 책임이 없다는 태도는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법안 제정 예고에 일각에서는 악용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직장갑질119 최혜인 노무사는 “법이란 게 근로자들에게 친숙하지 않다 보니 임금체불을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경우 등이 있다”며 “이런 디테일들을 제쳐두고 불인정된 게 많다 보니 허위 신고도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분석”이
김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처벌 규정이 생기게 되면 반대로 ‘을(乙)질’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도를 과잉으로 만들면 안 된다”며 “제도 자체가 사안의 성격상 모호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처벌 규정보다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초점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김지영 디지털뉴스 기자 jzero@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