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맹수는 새끼를 벼랑 끝에서 떨어뜨린다는 말이 있다. 생존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냉정함이 아니라 아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터득해야 몸이 기억한 채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익혀진 것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제주의 박경훈 감독은 U-17대표팀의 애제자였던 윤빛가람을 영입했다. 지난 시즌 성남에서 모진 시간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크게 꺾였던 윤빛가람이기에 스승 품에서 다시 ‘천재 포텐’을 펼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됐던 만남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재회의 그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3일 제주에서 만난 박경훈 감독은 “동료들도, 윤빛가람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왔을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권순형 송진형 오승범 등 기존의 미드필더들이 잘하고 있는데 새로 가세한 선수가 조금 미흡한데도 출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하면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다. 영입하지 안한 것만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빛가람이의 성격도 고려해야한다. 성실하고 착한 아이지만 다른 이들과 쉽게 융화되는 스타일은 아니다. 본인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어 “절대적으로 모든 선수들이 윤빛가람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그럴 생각도 없으나, 감독 입장에서 누구를 편애한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그래야 다른 선수들도 날 믿고 인정한다”면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단단한 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속의 뜻을 설명했다.
큰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윤빛가람이라는 선수의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박경훈 감독은 기다림을 택했다. 그것이 오래가는 법이고 살아가는 사냥하는 법을 몸에 익힐 수 있는 길이다.
박경훈 감독은 “불러서 다그치는 것보다 본인이 답을 찾아서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감독이 이러쿵저러쿵 할 나이들도 지났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는 조언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잘 섞여야 오래간다. 지금껏 두 번인가 면담했다”면서 마냥 냉정한 기다림은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행히 윤빛가람은 스승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는 “요새 보면, 많이 성숙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빛가람이 날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박 감독은 “윤빛가람이 언젠가 자신을 신경 쓰지 말고 감독님 의지대로 운영해 달라고 하더라. 자신은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제는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며 껄껄 웃었다.
박경훈 감독은 “훌륭한 이들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성장하게 마련이다”는 의미 있는
먹이를 잡아다가 주는 것보다 사냥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애정을 품고 있는 맹수 박경훈 감독에게 앞길 창창한 선수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윤빛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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