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한국 남자농구가 16년 만에 세계 무대에 진출했다. 유재학호의 11일간 필리핀 여정은 풍파를 이겨낸 힘겨운 사투였다. 끝내 스페인으로 뱃머리를 돌린 농구월드컵 목표 달성에 성공한 유재학호는 뜨거웠다.
유재학 감독이 이끈는 남자농구대표팀은 지난 1일부터 11일 동안 벌어진 2013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서 3위에 올라 2014 스페인 농구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1998년 그리스 세계선수권 이후 16년 만의 세계 무대 진출이자 통산 7번째 탈아시아 성적이었다.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이 16년 만에 세계 무대 진출권을 따낸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아시아선수권 공동취재단 |
한국은 이번 대회 예선부터 ‘죽음의 조’에 편성됐다. 우승을 차지한 이란과 중국과 한 조에 속했다.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했다. 예선 성적에 따라 결승까지 탄탄대로를 닦을 수 있었다.
한국은 첫 경기 중국전에 사활을 걸었다. 유 감독은 중국전을 대비한 강한 압박수비 시스템으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 이번 대회 첫 이변이었다. 두 번째 경기서 이란에 패했지만, 예선 1, 2라운드 5승1패의 성적으로 유리한 8강 고지를 선점했다.
8강 카타르전도 만만치 않았다. 카타르는 중동의 다크호스였다. 하지만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한국은 카타르를 무려 27점차로 완파하며 4강행에 안착했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카타르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한 판이었다. 유 감독은 대만을 이기고 올라온 카타르를 향해 “우리는 대만과 수비 수준이 다르다”라고 말한 것에 확실하게 책임을 졌다.
한국은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필리핀에 석패하며 결승행이 좌절됐다. 개최국의 열광적인 홈 텃세에 압도 당한 뼈아픈 패배였다. 마지막 월드컵 티켓 한 장을 놓고 대만과 숙명의 대결을 펼쳤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윌리엄존스컵에서 완패를 당했던 대만은 중국을 8강에서 누르고 올라온 복병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대만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귀화선수 퀸시 데이비스까지 영입한 대만은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한국에 18점차로 완패했다. 역시 수비의 승리였다.
한국은 11일 동안 무려 9경기를 소화하는 강행군을 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약체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으로 이번 대회 값진 성과를 냈다. 중국을 초반에 격파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첫 경기부터 한국에 패한 중국은 4강 진출조차 실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대진운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2013 필리핀 아시아선수권대회 베스트5에 선정된 남자농구대표팀 김민구는 이제 경희대 4학년에 불과하다. 사진=아시아선수권 공동취재단 |
유재학 감독은 최종 엔트리 12명 선발을 위해 고민이 많았다. 귀화혼혈선수 경쟁을 벌였던 이승준과 문태영을 두고 대회 직전 고심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새로운 얼굴들을 대거 선발하는 모험수를 뒀다. 유 감독은 당초 오세근과 양희종 등이 부상으로 제외되면서 젊은피를 수혈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미래를 내다 본 결정이었다. 이번 대표팀에는 이례적으로 대학생 5명이 포함됐다. 특히 경희대 4학년 졸업반인 김종규와 김민구를 제외하면 문성곤(고려대 2년), 이종현(고려대 1년), 최준용(연세대 1년) 등 고교 티를 막 벗은 선수들이었다.
유 감독은 철저하게 플래툰 시스템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확실한 베스트5 없이 12명의 선수들이 끊임없이 바꿔 뛰며 코트를 누볐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을 만난 팀들이 가장 당황했던 전략이다. 자연스럽게 젊은 선수들도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김민구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12강 리그부터 유 감독의 신임을 확실히 얻은 뒤 준결승전과 3-4위전에서 무려 3점슛 10개를 포함해 48득점을 쓸어담았다. 김민구는 대표팀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며 이번 대회 베스트5에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이종현과 김종규도 꾸준히 출장 기회를 얻어 한국의 골밑을 지켰다. 수치에서는 보이지 않는 든든한 빅맨 역할을 해냈다. 상대적으로 출장 기회가 적었던 문성곤과 최준용도 이번 대표팀에서 값진
유 감독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당초 목표였던 월드컵 진출권과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겨냥한 세대교체의 성공적 사례를 남기며 이번 대회를 마감했다. 필리핀 여정은 단 11일에 불과했지만, 침체돼 있던 한국 농구의 미래를 활짝 연 11년 밑그림을 그린 유재학호의 항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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