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3시즌까지 프로농구 서울 삼성에서 활약한 이규섭(36)이 미국프로농구(NBA) 공식 하부리그인 D-리그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지도자 첫 걸음을 내딛었다.
대경상고-고려대를 거친 이규섭은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삼성에 입단했다. 데뷔부터 은퇴까지 줄곧 삼성의 푸른 유니폼만 입은 프랜차이즈 스타다. 삼성에서 뛰면서 2000-01시즌, 2005-06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MK스포츠는 화려한 프로선수 생활을 접고 사회와 맞서 좌충우돌 경험을 쌓고 있는 ‘나이스Q’ 이규섭의 ‘제2의 농구인생’을 전한다.
지난 5월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서울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 이규섭. 사진=MK스포츠 DB |
정말 농구를 오래 했다.(물론 나보다 더 오래 하신 선배들이 많으시지만, 내가 주인공이니까 전적으로 내 기준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작은 형(현 이흥섭 동부 프로미 홍보팀 과장)을 따라 농구를 본 뒤 이놈(농구)과 심한 사랑에 빠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어린 나이에 새벽 6시에 일어나고 저녁 9시가 돼서야 집에 왔으니까. 그 힘든 생활을 좋아서 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살아온 농구 인생이 26년이다.
인생에서 농구가 전부였던 내가 마흔을 바라보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니 힘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물론 재밌는 일들도 많이 일아나기도 한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난 프로에서만 13년을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단지 농구밖에 없다. 나머지는 구단 프런트와 매니저가 모두 도와준다.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 외국을 나갈 때도 서류를 떼거나 항공권 티켓팅을 해 본 기억이 없다. 공항에 가면 모든 것이 준비돼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짐도 알아서 보내졌다. 난 내 몸만 잘 간수해 움직이면 끝이었다. 그땐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난 도움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젠 외국에 나가는 편한 일이 나에게 너무도 어려운 과제가 돼 버렸다. 이번에 미국을 나가면서 비자를 받는데 왜 이렇게 서류를 많이 요구하는지 미칠 지경이었다. 주민센터만 10회 왕복 달리기를 한 것 같다. 오죽하면 주민센터 직원 분이 “자주 오시네요. 그러지 마시고 꼼꼼하게 살피신 다음에 한 번에 다 받으세요”라고 웃으며 팁을 주기도 했다.
인터넷 사용도 서툴다보니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직접 주민센터를 찾아가는 일이 다반사. 무식하면 용감해야 한다. 잦은 노하우로 서류 발급 받는 일은 이제 능숙해졌다. 컴퓨터와도 친분을 쌓았다. 문서 작성이나 파일 첨부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주민센터에 밥 먹듯이 출근한 이유. NBA D-리그 산타크루즈와 코치 계약을 하고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이규섭은 지난 9월16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삼성에 또 한 번 도움을 받았다. 아마 삼성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선수 생활부터 은퇴 후 좋은 기회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이규섭은 현역 선수 은퇴 후 사회 초년생이자 아빠로 돌아갔다. 사진=이규섭 제공 |
내가 듣는 수업은 방학 집중 코스.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수업을 하는데 점심시간은 고작 30분이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했지만, 적응을 해야 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반 친구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쌩쌩한 아이들이라 다들 식사를 거르기도 한다. 그런데 난 꼭 밥을 먹어야 하는 스타일이라서 뛰어가서 간단한 햄버거라도 사먹고 와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이다. 첫째주에는 반 친구들과 패스트푸드점에만 3일 연속 갔다. 어린 친구들이라 가격에 민감하다보니 런치세트를 따라 먹었다. 난 밥을 먹고 싶다. 그래서 선심 쓰는 척 밥을 한 번 사고 그 뒤부터 같이 밥 먹기에 성공했다ㅋㅋ. 오후 수업을 마치면 화, 목은 티타임이 있다. 레벨에 상관없이 프리토킹을 하는 시간. 처음엔 머뭇거리다가 한 번 들이대고 보니 여러 사람들과 친해졌다. 좋았다.
학원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잠깐 놀아준 뒤 다시 2시간 동안 영어 1대1 과외수업을 받는다.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다보면 어느새 새벽 1시는 금방이다. 이런 생활의 반복이 은퇴 후 나의 일상이 돼버렸다. 아주 익숙하게도.
내 영어 실력은 얼마나 향상 됐을까. 이제는 실전 테스트. 잠실역에서 어느 외국 사람이 짐을 들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 혼자서 가방이 무려 세 개였다. 용기를 내 다가가 “May I help you?”하고 물으며 드디어 영어로 대화 시작. 프로선수 시절 외국선수들과 대화를 하거나 영어 선생님들과는 대화를 해봤지만, 이렇게 길거리에서 모르는 외국인과 얘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일단 내 소개부터 했다. 이건 준비돼 있던 것이기 때문에 길게 아주 길게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샬롸샬롸~” 하나도 못 알아듣고 당황한 표정을 짓자 그제서야 알아듣기 쉬운 단어와 매우 정확한 영어를 해주는 친절함을 베풀었다.
그렇게 진행된 10분의 대화. 창피함을 덮어주는 만족감 덕에 공부를 한 보람도 두 배였다. 이 사건 이후 난 영어 공부에 강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걱정이 태산이다. 흥미만 생겼지 통 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미국 생활을 해야할지 자꾸 걱정이 되는 요즘이다.“
[전 삼성 농구선수/현 산타크루즈 어시스턴트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