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서울) 임성일 기자]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부임 후 “선수 선발의 다양한 기준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각자의 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야한다는 것이다. 소속팀에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선수를 발탁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눈에 보이는 활약상이 없는데 이름값에 연연해 뽑지는 않겠다는 의지였다.
이런 ‘원칙’과 함께 아스날에서 오래도록 방황하고 있는 박주영은 지금껏 한 번도 호출받지 못했다. 홍 감독은 원칙은 오는 10월12일 브라질, 15일 말리와의 평가전을 치르기 위한 4기 명단 작성에서도 지켜졌다. ‘SNS 파문’의 주인공 기성용을 설왕설래 속에서도 발탁한 것과 달리 박주영의 이름은 이번에도 제외됐다.
부임 이후 ‘원칙’을 고수하던 홍명보 감독이 처음으로 예외를 적용했다. 박주영을 품기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말 바꾸기보다는 유연함의 가미로 보는 게 낫다. 사진= MK스포츠 DB |
이번에도 박주영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은 박주영을 품을 것이라는 게 축구계의 중론이다. 마땅한 공격자원이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홍명보호 4기 명단에서도 ‘전문 공격수’의 가뭄은 잘 드러났다. 25명의 엔트리에서 정상적인 ‘원톱’ 자원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선수는 지동원 뿐이다. 결국 박주영에게 시선이 향한다.
하지만 계속 소속팀에서 뛰지 못한다면 뽑는 사람 입장에서 꽤나 부담스럽다. 지금처럼 준비기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면 ‘원칙’을 고수할 수 있으나 시간이 촉박해지면 소신을 꺾어야할지도 모른다. 꺾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것도 ‘뜨거운 감자’ 박주영의 케이스에서 꺾인다면 논란은 불보듯 뻔하다. 때문에 홍명보 감독은 조심스레 ‘징검돌’을 놓았다.
실상 이번 명단 구성을 살펴보면 홍 감독의 원칙은 어느 정도 깨졌음을 알 수 있다.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고 있는 선수 2명이 발탁됐다. 한 명은 지동원이고 또 다른 이는 윤석영이다. 선덜랜드의 공격수 지동원이나 QPR의 측면수비수 윤석영은 현재 좀처럼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의 ‘원칙’에 입각한다면, 지동원과 윤석영도 호출되지 말았어야한다. 그러나 ‘예외’를 적용했다.
홍 감독은 “지동원이 소속팀에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으나, 리저브 멤버에는 포함돼 있다. 언제든 경기에 나갈 수 있는 몸 상태는 유지하고 있다”면서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표팀에서 용기를 줘서 소속팀에 돌려보낼 수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윤석영의 경우도 비슷했다. 홍 감독은 “윤석영 역시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왼쪽 풀백 자리에 3명(윤석영 박주호 김진수)을 뽑았다”는 말로 만약을 대비했다는 뜻을 덧붙였다.
지동원의 경우나 윤석영의 경우 모두 크게 문제될 것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를 박주영의 경우와 결부 지으면 모순이 된다. 원칙과 예외가 한꺼번에 적용되는 딜레마다. 때문에 홍명보 감독이 기자회견 중 밝힌 의견이 눈길을 끈다.
홍명보 감독은 “내가 너무 원칙 고수론자로 비춰지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심사숙고로 세운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보다는 지켜지는 게 옳을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원칙에 얽매여서 팀에 해가 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말 바꾸기’라는 곱지 않은 시선보다는 난국을 타계하기 위한 유연함의 가미라고 보는 것이 낫다. 홍명보 감독의 말처럼, 과해지면 소신도 아집이 될 수 있다. 원칙은 기본적인 규칙이지 그것이 ‘절대’이거나 ‘전부’가 될 필요는 없다.
홍명보 감독의 머리, 그리고 많은 축구인들의 생각 속에 스트라이커 박주영은 ‘필요한 자원’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다. 당장 잡기에는 너무 뜨겁다. 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4번째 소집명단을 발표하면
원칙을 어겼다고 홍명보 감독이 비난받을 상황은 아니다. 그 징검돌 역시 상황 전개에 따라 치워버릴 수도 있다. 지금 홍 감독은, 모든 경우의 수를 넒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몇 번씩 곱씹어 생각해야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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