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섹시’와 ‘화제’의 연예인은 있지만 시구에 ‘감동’은 없다. 프로야구 축제의 장인 포스트시즌때만이라도 연예인 일색인 시구가 아닌 의미 있는 시구를 할 수는 없을까.
올해도 연예인들이 대부분 포스트시즌 시구자로 나서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바뀐 추세이자 대세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조차도 연예인이 나서는 한국의 시구 문화는 분명 재고해야할 부분이 있다.
만약 잠실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서 LG 트윈스의 레전드인 ‘야생마’ 이상훈 고양 원더스 투수코치나 LG의 유일한 영구결번자인 김용수 전 중앙대 감독이 시구자로 나섰다면 어땠을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은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이나 지켜보는 팬들 모두에게 연예인 시구보다 더 행복하고 뜻 깊은 시간이 됐을 것이다. 11년만의 가을야구를 경험하게 된 팬들과, 구단의 레전드가 한 마음으로 현재의 LG 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하는 순간만큼 감동적인 만남이 있을까. 과거와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LA 다저스의 전설 샌디 쿠팩스가 지난 4월 2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전서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한희재 특파원 |
특히 포스트시즌만큼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 사실 구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연예인이 가장 중요한 날에 뜬금없이 시구자로 나서는 건 넌센스에 가깝다. 과거 판을 쳤던 정치인 시구만큼이나 구태의연한 일이다.
메이저리그의 문화는 다르다. 류현진의 소속팀인 LA 다저스는 연예인 시구가 많은 팀으로 손꼽힌다. 어느덧 경기 전 행사의 핵심이 된 우리나라의 시구와 달리, 시구가 경기 이전 행사의 일부로 여겨지나 구성원은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저스의 레전드들로 시구자가 모두 채워진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불독’ 오렐 허샤이저,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더스티 베이커, 레지 스미스, 론 세이, 스티브 가비 등의 레전드 선수들과 토미 라소다 전 감독이 시구자로 나섰다.
다저스 외에도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구단에 의미가 있는 날이나 포스트시즌에는 대부분 구단의 영광을 이끌었던 역사의 인물을 초대한다. 현재의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의미도 있지만, 팬들에게 향수를,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선물을 준다는 뜻도 크다. 역사의 이들을 주역으로 내세워 축제를 풍성하고 의미 있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레전드들이 함께 하는 시구 외에도 사회적 약자와 오랜 팬을 시구자로 선정하는 것도 의미 있는 시구의 한 형태다. 넥센은 지난 14일 준플레이오프 5차전서 ‘현대아줌마’로 불리는 열성 여성팬 정효순 씨(56)를 시구자로 초대했다. 정 씨는 과거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넥센까지 18년간 팀을 응원했고, 올 시즌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의 64경기를 모두 관람한 열성팬 중의 열성팬. 연예인과 같은 화제성은 전혀 없는 일반인이었다. 그러나 팬을 왕으로 생각해야하는 프로스포츠의 기본을 한 번 더 떠올리게 한 의미 있는 시구였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저스는 올해 4월 2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전서 팀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는 샌디 쿠팩스를 시구자로 초대했다. 백발이 성성한 샌디 쿠팩스는 최선을 다한 멋진 시구로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쿠팩스가 시구를 하고 모자를 벗어 팬들의 성원에 답례를 하는 것을 지켜 본 다저스 팬들은 가족, 지인들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공유
우리의 연예인 시구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포스트시즌만이라도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구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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