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상주) 임성일 기자] 3일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상주상무와 강원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경기는 결승전 같은 무대였다. K리그 챌린지 우승팀 상주상무와 K리그 클래식 12위 강원이 내년 어디서 뛰는가의 여부가 홈&어웨이 두 판에 의해 결정된다. 이기는 팀은 1부에서, 패하는 팀은 2부라는 현격한 공기 차이를 느껴야한다.
이렇게 중요한 단판 승부에서는 소위 ‘미친 선수’가 나오는 경우가 적잖다. 또 나와야 수월하게 경기를 풀 수 있다. 예상했던 키 플레이어보다는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비상이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은데, PO 1차전에서는 상주의 이상협이 그러했다.
누가 봐도 상주상무의 에이스는 이근호다. 경기를 앞두고 김용갑 강원 감독에게는 이근호 마크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 김 감독은 “이근호도 상주상무 선수 중 한 명”이라는 말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내놓았으나 “불편한 것은 있다”는 말로 경계대상이라는 것까진 부인하지 않았다. 적어도 다른 선수들보다는 이근호를 신경 썼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고를 친 것은 이근호가 아니었다.
의외의 사건이 ‘미친 선수’를 만들었다. 상주상무는 전반 시작과 동시에 악재를 당했다. 이근호와 함께 공격의 선봉에 선 하태균이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되는 큰 손실이었다. 박항서 감독은 벤치에 있던 이상협을 대신 투입했다. 경기 상황에 따른 조커로 예상됐던 이상협을 빨리 투입한 것은 분명 어긋난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상협은 다소 소강상태로 진행되던 전반 29분, 페널티에어리어 정면에서 오른발로 한 번 접은 뒤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강원의 골망을 흔들었다. 강원 김근배 골키퍼가 꼼짝할 수 없는 강력한 슈팅이었다. 박항서 감독은 펄쩍 뛰었다. ‘미친 왼발’로 불리던 이상협이 ‘미친 오른발’로 폭발했다.
2006년 FC서울을 통해 프로에 입문한 이상협은 소위 ‘미친 왼발’이라는 닉네임과 함께 임팩트 있는 왼발슈팅으로 꽤 강한 인상을 남겼던 선수다. 하지만, 그 인상이 꾸준한 활약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09년까지 서울에서 뛰던 이상협은 2010년 제주로 이적했고 2011년 시즌 중반 다시 제주에서 대전으로 팀을 옮기면서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그랬던 이상협이 지난해 입대와 더불어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박항서 감독과 함께 왼발만 특별한 선수가 아닌 전체적인 업그레이드를 도모하던 이상협은 2013시즌 무려 15골을 폭발시켰다. 이근호와 함께 동률을 이뤘지만 경기수가 많아(29경기-25경기) 아쉽게 챌린지 득점왕을 빼앗겼을 뿐, 이상협의 활약상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상주상무에는 이근호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실상 박항서 감독이 이상협을 벤치에 두었던 것은, 이상협과 어울리는 다른 벤치멤버들과의 시너지를 위해 아껴둔 복안이었다. 갑작스런 변수로
이상협은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미친 왼발’로 팀의 4번째 골까지 성공시켰다. 4-1 완승의 도화선부터 쐐기까지, 이날의 주인공은 이상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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