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4번 타자에 박병호(27 넥센 히어로즈)의 이름이 빠질 리가 없다. 이승엽의 노쇠화와 이대호의 일본진출로 대포가 실종한 한국야구에 박병호는 그야말로 보석같은 존재다. 남자 답게 선 굵은 얼굴에 과묵한 성격까지 타고난 스타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올 시즌 전 경기(128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1푼8리를 기록한 박병호는 홈런(37개) 타점(117타점) 득점(91득점) 장타율(0.602) 부문 1위로 4관왕에 올랐다. 각종 시상식에서 박병호는 당연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박병호에게도 암흑기가 있었다. 그 시기를 잘 헤처나오지 못했으면 지금의 박병호는 없다. 박병호는 지난 날을 돌아보며 자신의 야구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 박병호는 어머니의 권유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야구계에 입문했다. 사진=김영구 기자 |
박병호의 야구인생은 1993년부터 시작됐다. 야구의 ‘야’자도 몰랐다던 박병호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박병호는 “국가정책으로 꿈나무 육성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야구부 모집 전단지를 가져오셨다. 어머니의 권유로 야구에 첫 발을 내딛었다”라고 전했다.
“경기에 출전하는 것보다 선배들이 공을 치고받는 모습이 재밌었다. 야구경기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나 박병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몸을 담았던 광명리틀야구단이 해체됐다. 야구선수로서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청천벽력과 같았다. 박병호는 “당연히 야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때문에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 가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광명 하안초등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야구부를 찾았다. 이후 박병호는 서울 영일초등학교 야구부에 가입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박병호는 “전학 후 감독님이 ‘야구가 곧 직업이 된다’라고 말했다. 어렸지만 난 감독님의 말뜻을 이해했다. 덕분에 책임감을 가졌으며 야구에 대한 열정은 점점 더 커졌다”라고 했다.
빠른 성장발육이 단단한 체격조건을 갖추게 했다. 박병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잘 먹어 통통했다. 매년 신장이 5~10cm 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키가 184cm가 됐다”라며 자연스레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 박병호는 포수의 매력은 책임감이라고 밝혔다. 사진=김영구 기자 |
박병호의 청년기는 그저 평범한 야구부 학생이었다. 주장에 오른 적이 없었으며 특출난 행동으로 튀지도 않았다. 그렇게 조용하게 야구에만 몰두했던 박병호는 영남중학교 2학년 시절 사춘기로 반항심이 생겼다고 한다. 박병호는 “처음으로 야구가 싫었다. 더운 여름까지 겹쳐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일주일이 고비였던 박병호는 강창수 코치를 찾아 면담을 요청했다. 마음속에 쌓아뒀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놨다. 박병호는 “운동하면서 힘들었던 점, 선후배 관계 등 복합적인 내용이었다. 코치님은 내 고민을 다 받아줬고 나에게 여러 조언을 해줬다. 코치님 덕분에 기분이 하루 만에 풀렸다. 그 뒤부터 아마추어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엇나가지 않았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성남고 시절 박병호는 야구계가 주목했던 거포였다. 1학년 때부터 팀을 이끌었던 박병호는 고교야구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쏘아 올렸다. 당시 박병호는 팀을 대통령배 전국고교대회에서 우승으로 견인하지는 못했으나, 이 기록으로 대한야구협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 성과는 그대로 프로데뷔로 이어졌다. 박병호는 2005년 5월 7일 1차 드래프트로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그때 받은 계약금으로 박병호는 가족에게 아파트를 선물했다. “당시 아버지가 전라북도 익산에서 직장을 다녀서 부모님은 주말부부였다. 어머니는 형과 나에게 모든 걸 바쳤다”라며 “아버지가 ‘계약금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라고 물었을 때 ‘우리 4식구 집을 사자’라고 말했다. 야구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라고 밝혔다.
대신 포수로서의 꿈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어려서부터 포수를 고집했던 박병호는 “1차 지명된 후 다른 선수에게 포수로서의 기회를 더 주자는 제안을 들었다. 포수는 내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던 때다. 하지만 아직 리그 중이었기에 동료의 프로지명을 위해 나는 포수보다는 1루수로 출전하는 경기가 더 많았다. 또 그 친구가 나보다 포수를 더 잘 했기 때문에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며 동료의 가치를 더 높게 샀다.
여전히 포수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박병호다. 박병호는 “포수를 팀의 ‘안방마님’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책임감이 막중한 포지션이다. 모든 투수의 공을 받아야하기에 경기 중에는 더 집중해야 한다. 내외야수를 넘어 분명히 매력이 있으며 무거운 장비에는 팀의 미래가 짊어져 있다”라고 설명했다.
↑ 박병호는 지난달 한 시상식에서 수상 후 선배 이병규에게 꽃다발을 받았다. 사진=한희재 기자 |
박병호에게 LG 트윈스 이병규(9번)는 친형이자 가장 존경하는 선배다. 박병호는 “내가 LG에 입단했을 때 (이)병규형은 일본 프로야구로 가서 못 봤다. 내가 군 제대를 했을 때 병규형이 국내로 복귀했고 우리는 처음 만남을 가졌다. 당시 나는 건국대 근처에서 자취를 했고 형은 자양동에서 출퇴근했다. 형은 자가용을 구하기 전까지 내 차로 출퇴근을 같이 했다”라며 둘의 관계가 가까워졌던 배경을 설명했다.
“함께 이동하는 동안 병규형에게 야구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원정길에 올랐을 때도 옆자리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 1군과 2군을 오갔기에 자리를 못 잡았다. 지쳐가던 때에 내 자신감을 살려준 것도 병규형이다”라고 전했다.
이병규는 어깨가 축 쳐져있던 박병호를 때론 다독이기도 했고 약이 되는 독설을 하기도 했다. 박병호는 “당시 병규형이 ‘이겨내지 못하는 건 없다’고 했다. 토닥여주기도 했지만, 꾸짖을 땐 제대로 혼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박병호가 LG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됐을 때에도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응원해 준 이도 이병규였다. 박병호는 “트레이드 이후 후반기에 홈런을 몰아치자 병규형이 다른 팀이지만, 잘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라고 칭찬했다”라며 훈훈한 선후배 관계를 전했다.
넥센으로 이적한 박병호는 이병규에게 배운 선배의 역할을 그대로 실천했다. 특히 김민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졌고 원정길에 오르는 버스에서는 옆자리에 앉아 많은 대화를 가졌다고 한다.
박병호는 “내가 트레이드돼 넥센에 오기 일 년 전에 민성이도 롯데에서 트레이드 됐다. 민성이는 나를 살갑게 맞아줬고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김민성에게 특별한 조언은 없었다고 한다. 박병호는 “전 경기를 뛰기 위해 힘을 기르라고 했다. 지난해에 내가 전 경기를 뛸 수 있었던 것은 체력이었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내가 먼저 느꼈던 전 경기 출전의 쾌감을 나누며 아프지 말라고 했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올 시즌 박병호와 김민성은 전 경기에 출전하며 구단 첫 가을야구를 이끌었다.
↑ 박병호는 내년에도 전 경기 출전에 목표를 다졌다. 사진=김영구 기자 |
박병호는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홈런, 타점, 장타율 부문 1위에 올랐다. 올해는 득점부문까지 석권하며 리그 최고의 4번 타자로서 자리를 잡았다.
상대팀 투수들은 앞 다둬 내년 목표로 박병호를 잡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박병호는 상대 투수가 견제대상 1순위로 뽑는 위력적인 타자가 됐다.
박병호는 “솔직히 와 닿지 않는다. 내가 그 정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병호는 “만약 내가 내년 MVP를 받게 되더라도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잘 한다고 하지만, 으슥해하지 않고 내 자신을 더 다질 생각”이라며 마인드 컨트롤에 나섰다.
전 경기 출전이 박병호를 바꿔 놓았다. 박병호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어야 부상도 없다.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성과”라며 뿌듯해했다.
“LG에서 많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트레이드 이후 충격을 받았는지 야구에 대한 열정이 높아졌다. 새로운 시작을 기회로 잡았다”라고 밝혔다.
내년 박병호는 어느덧 프로데뷔 10년 차를 맞는다. 각오도 남달랐다. 박병호는 “앞으로 10년 더 야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우선 부상 없이 건강하게 야구를 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박병호를 향한 야구팬들의 시선에 대해 “시즌 초 ‘일 년 반짝’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전 경기를 출전하면서 볼넷 1등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삼고 전진했다. 그만큼 상대 투수가 견제하는 타자
박병호는 “앞으로 보여줘야 할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스스로 내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을 더 주입해 단점을 장점으로 채워가겠다”라며 “초심을 잃지 않고 최대한 내 자신을 낮추겠다. 올해 성적은 이미 끝났다. 나는 아직 더 노력해야 하는 타자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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