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한창 일해야 할 때인데 할 일이 별로 없네요….”
일선 에이전트의 한숨이다. 농담이 섞인 넋두리지만 마냥 푸념으로 들릴 수 없는 현실이다. 그의 말마따나,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 일거리가 없다. 그만큼 K리그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방증이다.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하는 이맘때는 보통 선수들을 사고파는 일들로 분주해야 어울린다. 에이전트들 사이에서는 “1년 벌이가 이때 대부분 결정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외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시기다. 하지만 2013년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춥다.
↑ K리그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완성된 인물들은 중국이나 중동으로, 유망주들은 일본과 유럽으로 유출되고 있다. K리그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사진= MK스포츠 DB |
연봉공개 이후 대부분의 구단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한 구단의 프런트의 “내년 목표는 성적 순위를 올리는 것 이상으로 연봉 총액 순위를 내리는 것”이라던 넋두리는 현재 K리그에 불어 닥친 한파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불필요한 거품을 쓸어내자는 좋은 취지이고, 언젠가는 극복해야할 일이지만 이로 인해 당장은 모두가 몸을 움츠리고 있다. 문제는, 얼어붙은 K리그의 시장과 함께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자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 갈래의 색깔은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중국 슈퍼리그는 K리그산 완성품을 선호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 검증된 네임벨류들을 흡수하고 있다. 올 시즌 중반 전북의 ‘녹색 독수리’ 에닝요가 장춘 야타이로 떠난 것이 대표적이다. 에닝요는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최고의 외국인 플레이어였다. 그에 버금가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서도 중국 클럽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미 일부 중국 언론은 K리그 득점왕 3연패에 빛나는 데얀의 중국행을 보도한 상태다. FC서울 측은 “확정은 아니다”면서도 “여러 곳에서 제안이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말로 대륙의 오퍼를 인정했다. ‘와플 폭격기’로 통하는 전북의 스트라이커 케빈 역시 중국 쪽 제안을 받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케빈은 데얀 이상의 무게감을 지닌 공격수다.
외국인 선수들 뿐 아니라 수원과의 결별을 공식선언한 곽희주, 전북의 수비수로 활약했던 임유환 등 이름값과 실력을 갖췄으나 이제는 몸값이 부담스러워진 선수들을 향한 중국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유혹의 무기는 단연 ‘돈’이다. ACL 우승팀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대변되는 중국 클럽들의 과감한 투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선수는 흔치 않다.
J리그는 유망주들을 흡수하고 있다. 이 현상 역시 올해의 특별한 변화는 아니다. 올해 초 황선홍 포항 감독은 “왜 젊은 선수들이 무조건 일본으로 넘어가려는지 답답하다”는 토로를 전했다. 그의 토로 속에는, 나가는 것도 답답하지만 일본에서 제대로 뿌리 내리는 재목들이 없다는 한숨이 깊다.
그는 “성공은커녕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도 많지 않다. 2부리그까지 합치면 진출한 선수가 40~50명이나 된다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는 말로 무분별한 유출에 대해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실제로 세레소 오사카의 김진현, 오미야 아르디자의 조영철, 쇼난 벨마레의 한국영, 사간도스의 김민우 등을 제외한다면 주전이라 말할 수 있는 선수들은 드물다. ‘K리그보다 나은 무대’라는 믿음으로 진출한 새싹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K리그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한 축구 관계자는 “이름 있는 선수들은 몸값을 감당하지 못해 중국이나 중동에 빼앗기고,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들은 일본이나 유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대체 K리그는 무엇으로 팬들을 끌어 모으려는지 걱정이 된다”는 우려감을 표했다.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품’이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물건’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0일 2014년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진 단어는 ‘패스’였다. 각 구단이 지명권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침묵하던 구단들은 계약기간 1년, 연봉 2,000만원을 받는 ‘번외지명’ 순서에서 활기를 띄었다. 드래프트를 통해 K리그에 입성한 87명 중 50%에 가까운 43명이 번외지명을 통해서 입단했다. 뽑을 떡잎도 줄었고, 싹을 키우기 위한 밭의 상황과 의지도 좋지 않다.
K리그는 2013년 30주년을 맞았다. 역사가 제법 됐으나 아직도 과도기다. 승강제라는 ‘없던 일’을 경험하느라 프로연맹도 각 구단들도 정신이 없다. 엎친 데 덮쳤다. ‘순위’라는 생존경쟁에 더해 ‘운영’이라는 현실적인 숙제를 푸느라 많은 팀들이 길게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복합적인 ‘유출’ 방식도 나오고 있다.
2010년 1월 FC도쿄에 입단했던 김영권은 오미야 아르디자를 거쳐 중국의 빅클럽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입단해 FC서울의 ACL 우승을 막아냈다. 제주에 우선순위로 발탁됐던 신예 류승우는 입단 후 ‘위탁임대’라는 기막힌 ‘뒷문’으로 독일 레버쿠젠 진출에
있는 자원들을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키우지도 못하는 현실이라면 K리그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ACL에서 5년 연속 결승진출 클럽을 배출했다는 사실만으로 ‘아시아 No.1’을 자랑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음을 진지하게 생각해야한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