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하던 짓도 멍석을 깔면 못한다는 말은 옛말이었다. 숨겨져 있던 ‘끼’는 멍석이 깔리자 제대로 분출됐다. 필드 안에서 공만 잘 차던 축구선수 이미지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됐다. 2013년의 축구선수들은 즉석에서 ‘보이그룹’을 결성할 정도다. 연예인 뺨치는 선수들의 끼를 통해 한국축구의 건강함도 엿볼 수 있었다.
29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3’은 그 어느 해보다 유쾌하고 행복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이사장으로 있는 <홍명보장학재단>이 주최하는 열한 번째 자선경기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어려운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누자는 취지의 행사에 성공과 실패를 말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나, 2013년 홍명보 자선경기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 ‘보이그룹’ 쯤은 즉석에서 결성하는 선수들이 담대한 끼를 보면서 한국축구의 건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MK스포츠 DB |
자선경기의 ‘백미’인 골 세리머니가 마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줄줄이 꼬리를 물었다. 홍명보 감독만 ‘왕따’를 시켰던 세리머니를 시작으로 수류탄 투척 세리머니와 봅슬레이 세리머니, 기관총을 수없이 맞아도 끝까지 쓰러지지 않던 구자철과 손흥민-서경석이 동시에 웃통을 벗어 복근을 자랑했던 퍼포먼스 그리고 여자 축구선수 여민지가 최장신 김신욱에게 어퍼컷을 날리던 장면까지 각종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이미지를 포기한 희생도 있었다. 막내 손흥민은 지소연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소녀 팬들의 비명이 터지게 했고, 하대성은 이를 따라해 여민지 볼에 입 맞추다 ‘뺨’을 맞아야했다. 센스가 돋보였다. 박종우는 김승규(변기)-이명주(변기 커버)-김신욱(변기 손잡이)로 구성된 좌변기에 앉아 용변(?)을 보는 과감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개그맨 뺨쳤다.
하프타임 때 인기 걸그룹 크래용팝과 함께 했던 선수들의 흥겨운 ‘쇼타임’도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른바 ‘오기통 댄스’라는 안무가 나올 때 손흥민 김진수 박종우가 무대 위로 ‘난입’해 함께 춤을 추던 모습은 백미였다. 특히 제2의 이영표라 불리는 김진수는 완벽하게 동작을 따라하면서 숨은 끼를 폭발시켰다. 홍정호 김영권 김진수가 펜스를 뛰어 넘어 팬들 앞으로 달려가 ‘춤판’을 벌리던 모습은 즉석 보이그룹의 탄생이었다.
그들의 프로다운 팬서비스에 보는 내내 흐뭇했다. 필드 안에서만이 아니라 필드 밖에서도 즐길 줄 아는 모습에 팬들은 행복했다. 과거 듬직하게 보이는 것만이 미덕이었던 시절의 축구선수들에게서는 찾을 수도, 기대하기도 힘든 모습이었다. 필드에서든 대중들과 함께하는 무대에서든, 경기장 안팎의 ‘판’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즐길 줄 아는 시대가 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큰 변화이고 엄청난 발전이다.
홍명보 감독은 행사 후 “필드 안과 밖은 또 달라야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팬서비스 자세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몇 년 전부터는 나도 놀라고 있다. 선수들이 팬들과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는 소감을 전했다.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멍석 위에서 거침없이 즐기던 선수들을 보며 2013년 대한민국 축구의 건강함을 느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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