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무려 여섯 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1994년, 처음 올림픽을 경험할 때는 풋풋한 십대였는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시간 동안 이규혁(36)의 나이도 서른 중반을 훌쩍 넘었다. 안타깝게도 여섯 번의 올림픽은 모두 이규혁을 외면했다. 지난 5번의 대회에서 시상대에 오른 적이 없다.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살아 있는 전설 이규혁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높은 대회인 소치 동계올림픽 역시 메달의 섭섭함은 달래주지 못할 공산이 커 보인다. 한국시간으로 11일 새벽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 소치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도 이규혁은 레이스 합계 70초64(1차 35초16, 2차 35초48)의 기록으로 18위를 기록했다.
↑ 이규혁은 더욱 값진 메달을 가슴으로 캐냈다. 메달의 참뜻을 깨닫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사진(러시아 소치)= 옥영화 기자 |
빙판을 지칠 때는 그야말로 이를 악물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레이스가 끝난 뒤에는 그 독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온화한 표정의 ‘맏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후회 없이 쏟아낸 뒤 나온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진정한 스포츠맨십의 표본이었다.
18위로 경기를 마친 뒤 전한 소감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10명 이상은 이긴 것 같다”고 웃음을 보인 이규혁은 “오늘 아침에도 1등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행복했다.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로 즐겁다”는 말로 듣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단순히 참가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는 것이 아니다. 성적보다 더 중요한 ‘도전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지난 20년을 통해 어렵게 깨달은 이규혁은,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후배 모태범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태범이에게 4위도 정말 잘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1초 이내의 승부라 누구든 승패가 갈릴 수 있다”면서 “꼭 1, 2등을 해야만 경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을 전했다. 메달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 집착을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에둘러 설명한 것이다. 물론,
이규혁은 아쉬운 500m 경기를 마친 뒤 “원래 1000m에 초점을 맞췄고 그 가능성을 보았다”고 당당하게 출사표를 전했다. 이어 “나만의 방식으로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덧붙였다.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진짜 메달도 이미 마음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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