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마이애미) 김재호 특파원]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는 전 세계 야구선수들 중 약 150여 명에게만 허락된,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런 자리가 단 하루만 허락된다면 어떨까. LA다저스의 우완 투수 스티븐 파이프(28)는 그 하루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파이프는 5일 마이애미와의 원정경기에서 부상자 명단에 오른 류현진을 대신해 마운드에 올랐다. 선발 등판을 마친 뒤 다시 트리플A로 내려갔다. 그야말로 임시 선발이었다.
↑ 스티븐 파이프는 지난 5일(한국시간), 류현진을 대신해 마운드에 올랐다. 사진(美 마이애미)= 조미예 특파원 |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파이프는 “페르난데스라는 좋은 투수를 상대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매 투구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면서 경기에 임한 소감을 밝혔다.
지난 1일 트리플A 앨버커키에서 불펜으로 1이닝을 던진 그는 경기 전날 마이애미로 이동, 선수단에 합류했다. 다른 선발투수들과 달리 경기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성적도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이날 등판 전까지 트리플A에서 거둔 성적은 1승 2패 평균자책점 7.08. 때문에 그가 임시 선발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 이날 등판을 마친 파이프는 다시 트리플A로 내려갔다. 그에게는 또 다시 기회가 올 것이다. 사진(美 마이애미)= 조미예 특파원 |
짧은 준비 기간에 대해서는 “어떤 경기든 똑같다고 생각하기에 힘든 일은 아니었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그 경기가 어떤 경기든, 정신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똑같다. 경기에 나가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라며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메이저리그든, 트리플A든, 더블A든 상관없다. 어느 단계, 어느 경기장이든 선발로서 최대한 오래 경기를 끌고 가고, 팀에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말을 이었다. 메이저리그라는 이름값에 위축되지 않고 차분히 자신만의 경기를 한 것이 주효했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보스턴에 지명된 파이프는 2011년 팀 페데로위츠와 함께 트레이드를 통해 다저스로 적을 옮겼다. 2012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주로 임시 선발로 뛰었다. 지난해 선발진의 연쇄 부상을 틈타 로테이션 진입에 성공, 10경기에서 53 1/3이닝을 던지며 4승 4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했다. 6월 4일 샌디에이고와의 홈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첫 승을 차지했다.
5일 마이애미와의 경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선발진에 자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조시 베켓, 폴 마홀름 등 4, 5선발들이 자기 몫을 해주고 있고, 클레이튼 커쇼가 7일 경기에서 복귀하며 류현진도 부상자 명단 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은 트리플A에서 선발 투수로서 내공을 더 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시즌은 길다. 지난 시즌처럼 기회가
아직 트리플A행을 통보받기 전 인터뷰를 가진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떻게 되든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본다. 매일 상황은 달라지는 법이다. 언젠가는 또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기회를 갈망하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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