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1군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가 눈물을 흘렸다. 파이팅 만큼은 자신 있다. 내 역할은 그것이다.”
프로야구 SK와이번스 포수 허웅(31)은 지난 7일 문학 삼성전에서 944일만에 1군 경기에 출장했다. 허웅에게 프로란 간절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사직구장 매점 아들로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했다. 추신수와 함께 부산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2002년 현대 유니콘스의 신인 2차지명도 받았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포수였던 박경완과 김동수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 944일만의 출장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허웅은 시범경기 개막전 함께 팀의 승리 마지막을 지켰던 박희수와 7일 문학 삼성전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다. 사진=MK스포츠 DB |
하지만 끝내 꿈을 놓을 수 없었다. 낮에는 부산고에 가서 야구를 하고, 밤에는 술안주를 만드는 날들이 반복됐다. 이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본 독립리그의 문도 두들겼다. 8개월여를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고 돌아온 2009년 SK의 입단테스트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김성근 SK 와이번스 전 감독으로부터 “2군 숙소로 가라”는 합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곳에도 박경완, 정상호라는 정상급 포수가 허웅의 앞에 있었다. 거기에 최경철 등 2군 포수들과의 경쟁에서밀려 백업으로도 나서지 못했다. 1군의 벽은 그렇게 허웅에게 너무나 높고 높았다. 그렇게 2군 포수로만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다 마침내 2011년 7월 31일 대전 한화전 6회 정상호와 교체돼 10년만의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7경기에 주로 교체로 출장해 타율 2할2푼 11안타 3타점의 프로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기약없는 2군 생활.
지난 3일 거의 8~9개월여 만에 1군에 등록됐다. 허웅의 얼굴은 그을리다 못해 검붉게 타있었다. 그리고 7일 문학 삼성전서 2011년 10월6일 광주 KIA전 이후 944일만에 1군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됐다.
허웅은 “2군에서 기다리면서 기회가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호형이 최근 (조)인성형님이 부상을 당해서 경기 후반까지 계속 마스크를 쓰는 걸 보고 걱정이 많이 됐다. 그러면서 체력안배를 위해서 나를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 허웅의 프로 경력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사진=MK스포츠 DB |
이만수 감독 또한 7일 경기를 앞두고 “허웅이 투수들의 공을 잘 받아 주는 타입이다”라며 투수들과의 호흡에 대한 기대감을 전하기도 했다. 7일 경기 윤희상과 호흡을 맞춘 허웅은 공격적이면서도 다채로운 볼배합을 이끌며 6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후 구원진이 9회 대거 5실점을 하면서 역전패를 당했으나 허웅의 리드와 수비는 전체적으로 준수했다. 타석에서도 3회 선두타자로 나서 좌측방면의 안타를 때리고 나가 팀의 선취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허웅은 “어린이날에 사실은 어디에 놀러 갈까 아내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1군에 올라오게 돼서 경기장으로 오라고 했다. 아내에게 1군에 올라가게 됐다고 전화하니까 눈물을 흘리더라”며 1군 복귀에 더 감동받았던 아내의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허웅은 스스로 조연을 자처했다. “내 역할은 어디서나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파이팅만큼은 자신있다. 최근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더그아웃에서 그것만큼은 책임질 수 있다”면서 “또 마스크를 쓰게 된다면 상대팀 타자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투수들의 기를 북돋워주겠다”고 했다.
“올라와서 코칭스태프께도 말씀을 드렸다. 설령 내가 나가서 질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우
허웅의 역경의 스토리는 또 잠깐의 화제로 언급됐다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허웅이 쉽게 꿈을 포기하지 않으리란 것도 확실해 보였다. 허웅의 말처럼 그의 야구인생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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