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태국 방콕) 이상철 기자] 16살 소년의 꿈은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도 결과는 뒤바뀌지 않았다. 다시 한 번의 기회도 없다. 그렇기에 이승우(바르셀로나)는 분했다.
지난 20일 막을 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은 이승우를 위한 잔칫상이었다. 한국축구의 보석이자 미래인 이승우는 공식 무대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가장 빛난 ‘별’이 됐다. 또래들과 겨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득점왕을 차지했고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했다. AFC U-16 챔피언십에서 개인상을 싹쓸이한 선수는 2010년 티무르 카키모프(우즈베키스탄) 이후 이승우가 처음이다. 카키모프가 다쿠미 미나미로(일본)와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는 걸 고려하면, 이승우의 단독 수상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 이승우는 농담을 몰랐다. 표정 관리도 잘 못한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애정과 굽히지 않는 자세, 자신감, 진지함 역시 숨기지 않는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이승우는 분했다. 다 잡았던 우승을 놓쳤으니 더욱 그랬다. 이승우는 “전반엔 우리가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 후반 들어 역습으로 1골을 내주며 꼬였다. 결국 다시 두 번째 역습에 무너졌다”라며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승우는 이번 대회 기간 내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메시의 후계자’로 불리는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첫 공식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기대에 걸맞는, 아니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그에 대한 열광은 한국축구의 끊긴 스트라이커 계보에도 있다. 35살의 이동국(전북)이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을 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동국의 실력이 아니라 이동국을 능가할 공격수가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 가뭄 속에 내린 비가 이승우였다. 이승우는 “많은 관심을 보여줘 기쁘다. 부담은 없다. 더 좋은 선수가 돼 보답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승우는 당돌하다. 자신감이 넘쳐 자칫 부정적인 이미지를 낳기도 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뛰고 싶다거나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낳았다. 16살의 어린 나이를 고려하면 포부가 넘치나 자칫 ‘싸가지가 없다’라는 인식도 심어줬다.
그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거침이 없었다. 웃음을 잃은 가운데 이승우는 또 한 번의 폭탄발언을 했다. 내년 칠레에서 개최하는 FIFA U-17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밝혔다.
역대 FIFA U-17 월드컵에서 한국은 8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한국이 전 연령을 통틀어 FIFA 주관대회에서 우승한 건 없었다. 여자대표팀으로 범위를 넓히면 2010년 FIFA U-20 여자월드컵 우승이 유일하다. 그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겠다니 당돌해도 너무 당돌했다. 실현 불가능한 일일 가능성이 높기에 헛웃음이 터져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이승우는 당돌해도 진지했다. 싸가지가 없어 보여도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허무맹랑한 발언이 아니었다. “어느 대회이건 출전하는 모든 팀의 목표는 우승이다”라는 이유도 간단하게 생각하면 응당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또한, 저 혼자 잘 났기 때문이 아니다. 코칭스태프와 동료에 대한 믿음도 컸다. “우린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코칭스태프와 모든 선수들이 일류다.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 충분히 우승할 전력을 갖췄다. 남은 기간 부족한 부분만 잘 보완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의 말에는 개인이 아닌 팀의 중요성이 담겨있다.
↑ 20일 열린 2014 AFC U-16 챔피언십 결승 한국-북한전에서의 이승우.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때문에 허풍도 없다. 진지한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논란이 됐던 국가대표 최연소 발탁과 관련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태극마크는 한국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꾼다. 나도 당연하다. 현재로선 준비만 열심히 하고 있다. 만약 국가대표로 뽑아준다면 언제든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전에 좀 키도 더 커야 하지 않겠냐.”
농담 섞인 발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건방진 녀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승우의 말대로 국가대표는 누구에게나 길이 열려있다. 마냥 잘못된 발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진지한 어린 공격수는 내년 세계 정상 등극을 꿈꾸고 있다. 아시아 정상을 밟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평소 제 멋대로가 아니다. 자기과시도 허풍도 없다. 이 발언이 황당하게 느껴질 지라도 이승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솔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꺼낸 이야기다. 그리고 끝까지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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