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저의 (최)동원이를, 우리들의 (최)동원이를 영원히 아껴달라.”
무려 40년을 알고 지낸 친구를 기억하는 목소리는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격정이 들어차 있었다. 한국야구의 레전드이자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투수 故 최동원을 떠올리며 이만수 前 SK 감독이 감동의 당부를 남겼다.
故 최동원을 기리고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제정된 '제 1회 무쇠팔 최동원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부산 남구 문현동 금융단지 내 부산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최동원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부산은행이 후원한 이 행사는 故 최동원의 현역 선수 시절 등번호 11을 기념하기 위해 11월 11일 열렸고 KIA 타이거즈의 좌완투수 양현종이 초대 수상자가 됐다.
↑ 사진=천정환 기자 |
많은 이들이 생생하게 故 최동원을 추억했고, 시상식의 마지막에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쥔 사람은 다름 아닌 이만수 전 감독이었다. 3년 전 작고한 고인의 곁을 지킨이가 40년지기인 이 전 감독이었기에 이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당초 SK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로 떠나 야구전도사로 나설 예정이었던 이 전 감독은 ‘제 1회 무쇠팔 최동원 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정도 연기했다.
이 전 감독은 “친구를 위해서 오늘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지만 밤을 지새워도 다 이야기를 할 수 없얼 것 같다. 내가 (최)동원이를 처음 본 것은 1972년 청주에서 문교부장관기 대회를 치를때였는데 그때 당시만해도 굉장히 작은 선수였는데 볼이 굉장히 빨랐다”며 故 최동원에게 받은 첫인상을 떠올렸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이 전 감독은 “당시에 그래서 우리팀이 졌다. 그 이후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결승전만 가면 최동원 선수 때문에 이길수가 없었다. 나는 한양대, 최동원 선수는 연세대에 다녔다. 우리팀의 전력도 좋았지만 결국에는 최동원 선수 때문에 이길수가 없었다”며 “프로에 들어와서도 삼성에 있었을 당시에도 또 준우승을 했다. 최동원 선수가 4연승을 했기때문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새삼 고인의 대단한 야구실력을 기렸다.
한국야구에 더없을 인물로 많은 이들이 故 최동원을 떠올리는 것은 그의 야구 열정때문이기도 했다. 이 전 감독은 “최동원 선수의 열정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최고였다. 그 최동원 선수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우리 후배들이 그대로 배웠으면 좋겠다”며 뼈 있는 당부를 했다.
이어 이 전 감독은 “프로야구가 벌써 30년이 지났는데 최동원 선수가 가장 잘한 것은 개인이 아닌 팀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는 점이었다. 그 점이 오늘의 최동원 선수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자리를 잡은 것은 故 최동원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초대회장을 맡은 故 최동원은 선수협의 필요성을 절감해 창설을 주도했고 초대회장의 총대를 맸다. 이 때문에 구단들의 공공의 적이 된 故 최동원은 쫓겨나듯이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기도 했었다.
이 전 감독은 고인과의 마지막 추억도 떠올렸다.
“최동원 선수가 운명하기 전날 병원에서 만났다. 당시 그 전까지는 의식이 없었는데 나의 손을 잡고 눈으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더라. 그때는 잘 몰랐다.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시는데
불세출의 투수이자 곁을 떠난 40년지기 친구를 떠올리는 이 전 감독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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