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전성민 기자] 모죽(毛竹)이라는 대나무가 있다. 5년 동안 뿌리를 내리며 내실을 다지다가 때가 되면 하루에 70~80cm씩 자라 어느새 30m의 큰 대나무가 된다. 지난 5년간 한화 이글스의 투수 코치를 맡은 정민철(42)이 제자들의 잠재력을 믿고 있다..
지난 10월29일 코치직에서 물러난 정민철은 22년간 정들었던 이글스 유니폼을 벗었다. 1992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 정민철은 2009년 은퇴 후 2010년부터 한화 투수 코치로 활동했다.
현재 정민철은 야구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서있다. 2015년부터 MBC스포츠 플러스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 지난 7월15일 오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승리한 한화 정민철 투수코치가 4승을 챙긴 이태양의 볼을 만지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중립적인 해설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그는 마이크가 잠시 꺼지면 이글스 선배로 돌아간다.
정민철은 최근 일본 오키나와에서 마무리 훈련 중인 한화의 박정진, 윤규진, 안영명, 이태양과 영상 통화를 자주한다. 코치와 선수 사이였을 때는 야구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지만 현재는 소소한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는 선후배 사이가 됐다.
정민철은 “이제 나보다 더 훌륭한 코치님들이 오셨다. 기술적인 면에서 향상된 정보를 얻을 것이다”며 “최근 한화 투수진의 성적이 안 좋았지만 그만큼 기회를 많이 부여 받았다. 모죽처럼 5년동안 어려움을 겪으며 서서히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한다. 내년 되면 이태양은 기회와 함께 책임감도 느낄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투수진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는데 자신의 잘못이 크다며 자책한 정민철의 말에는 한화 투수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정민철이 팀을 떠남에 따라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도 실망이 컸다. 정민철은 한화의 ‘레전드’(전설)로 불린다. 이에 대해 정민철은 “과분한 말이다.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앞으로 야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먼 훗날 ‘레전드’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가져본다. 앞으로 더욱 갈고 닦겠다”고 말했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일지 모른다.
해설자는 야구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자료를 정리하거나 책을 보는 일이 많다. 최근 정민철이 야구 공부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바로 성준(52) SK 와이번스 코치다. 정민철이 가장 존경하고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2010년 정민철이 한화 1군 불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성준 코치는 1군 메인 투수 코치였다. 당시 해외 전지 훈련 때 정민철은 성준 코치와 함께 방을 썼다.
성준 코치는 엄청난 학구파였다. 매일 오후 10시에 취침, 새벽 4시에 기상을 해 그 날의 일정을 정리하고 야구 공부를 했다. 기본적인 준비부터 팀의 융화를 중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정민철은 성준 코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성준 코치는 최근 새로운 일을 하게 된 후배에게 “야구에 관련된 일이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일이다. 잘할 꺼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새로운 마운드 위에선 정민철의 뒤에는 많은 선후배들이 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정민철은 또 다시 최고의 공을 던지기 위해 마운드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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