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강대호 기자] UFC 2번째 한국인이 될 뻔했던 종합격투기(MMA) 기대주가 있었다. 국내 복귀를 준비 중인 박원식(29)이 로드 FC 라이트급(-70kg) 챔피언 권아솔과 1차 방어전 상대였던 이광희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권아솔은 21일 장충체육관에서 ‘로드 FC 22’의 메인이벤트로 열린 전 스피릿 MC 챔피언 이광희와의 타이틀전에서 3라운드 1분 12초 만에 TKO 승을 거뒀다. 이광희의 이마 상처 출혈이 심하여 의료진이 경기속행불능으로 판단했다.
박원식은 권아솔·이광희와 1986년생 동갑이자 주 체급이 라이트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훗날 상대가 될지도 모르는 두 선수의 타이틀전을 대회 당일 관중석에서 직접 지켜봤다. 박원식이 본 챔피언과 도전자는 어땠을까?
↑ 박원식이 국내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사진=박원식 제공 |
↑ 권아솔이 챔피언 1차 방어전 승리 후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사진(장충체육관)=천정환 기자 |
↑ 이광희(왼쪽)가 로드 FC 타이틀전에서 권아솔(오른쪽)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있다. 사진(장충체육관)=천정환 기자 |
“긴장감 넘치는 경기였다. 수준은 다소 실망스러웠다”고 23일 ‘MK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운을 뗀 박원식은 “이광희의 무기는 정면 돌파에 이은 훅밖에 없다. 권아솔이 거리 싸움이나 팔꿈치 공격, 몸통 차기 등으로 전반적으로 잘 대처했다”면서도 “그러나 챔피언 벨트를 놓고 싸우는 대결이라고 하기에는 경기력이 모자랐다. 박진감 넘치는 승부는 굳이 타이틀전이 아니라도 보여줄 수 있다. 챔피언과 도전자의 경기라면 동 체급 선수들에게 ‘우리는 이런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량으로 아웅다웅 ‘감정싸움’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일본 무대를 중심으로 박원식은 2007~2010년 외국 선수와의 대결에서 11전 8승 1무 1패 1무효로 선전했다. ‘1패’도 UFC 경력자 히로나카 구니요시(39·일본)를 맞아 1라운드 종료 후 눈 부상으로 경기 속행이 불가능했던 불운의 결과다. 히로나카는 UFC에서 1승 4패를 기록했다.
‘프라이드 FC’는 2007년 10월 4일 UFC에 흡수되기 전까지 세계 MMA를 양분했던 대회다. 이 프라이드의 중역들이 K-1과 합작하여 2008~2012년 운영한 것이 ‘드림’이었다. 박원식은 2009년 10월 25일 ‘드림 12’에서 히로나카와 대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원식에게 히로나카전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었다. “드림과 계약 직전 UFC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은 박원식은 “대리인이 UFC 매치메이커 조 실바가 너무 낮은 출전료를 제시한다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결국, 계약조건이 좋은 드림을 택했다”고 회상했다. 부상으로 TKO 패를 당한 채로 처음이자 마지막 드림 경기는 막을 내렸다.
드림 12 당시 UFC에는 한국 국적자로는 첫 진출자인 웰터급(-77kg)의 김동현(34)만이 활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원식의 아쉬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UFC의 형제단체였다가 2010년 12월 16일 통합된 WEC에서 최초의 한국인 선수가 될 기회도 있었다.
제5대 UFC 라이트급 챔피언이자 한국계 어머니로 잘 알려진 벤슨 헨더슨(32·미국)은 제6대 WEC 라이트급 챔피언이기도 했다. 박원식은 “WEC에 진출할 수도 있었으나 거절했다. 직후 헨더슨이 WEC에 데뷔했다”면서 “그때 WEC와 계약했다면 자연스럽게 UFC로 합류했을 텐데… 큰 실수였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헨더슨의 WEC 데뷔전은 2009년 1월 25일이었다. WEC를 거쳐 UFC 페더급(-66kg) 타이틀전을 치를 정도로 스타가 된 정찬성(28)은 2010년 4월 24일 WEC 첫 경기를 치렀다. 계약 이후 출전까지 걸리는 기간을 고려해도 박원식이 WEC 첫 한국인이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러나 이처럼 촉망받았던 박원식의 앞에 놓인 것은 MMA 3연패와 목디스크 그리고 은퇴였다. 막시모 블랑코(32·베네수엘라)에게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고 요시다 요시유키(41·일본)에게는 2라운드 종료 4초를 남기고 ‘리어네이키드 초크’라는 조르기 기술에 항복하고 말았다.
블랑코는 현재 UFC에서 3승 3패를 기록 중이다. 요시다도 UFC 전적 2승 3패의 강자였다. 박원식에게 2010년 12월 30일 블랑코전은 1525일 만에 경험하는 패배였다. 2013년 11월 24일 있었던 요시다전은 지금까지 박원식의 MMA 마지막 경기이자 무려 2585일 만의 기권패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 유일무이의 대회가 된 UFC에 진출해야겠다는 조급함이 화를 불렀다. “3연패 중에서 블랑코전을 제외한 나머지 2경기는 시합은 고사하고 훈련할 상태도 아니었다. 그런 몸으로 시합에 나간 것을 자만이었다고 질타해도 할 말이 없다. 프로답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후회한 박원식은 “돌이켜보면 조급함 때문인 것 같다. 뒤처질 수 없었다. UFC만을 원했던 것이 패배로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당시 박원식은 영리활동이 금지된 공익근무요원(현 사회복무요원)이었다. UFC를 간절히 원한 그는 출전료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기관장의 허락을 받았으나 여러모로 준비에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했다.
훈련부족과 평정심을 잃은 마음은 부상의 가장 큰 적이다. 3연패로 UFC 진출이 사실상 좌절되자 박원식은 은퇴를 선언했는데 이유는 ‘목디스크’였다.
“요시다전 대비 훈련 과정에서 레슬링을 하다가 목디스크가 터졌다. 점점 오른팔이 마비되어 시합 직전에는 신경이 20%밖에 작동하지 않았다. 근력 저하로 오른손으로는 식사조차 힘들었다. 수술을 받았으나 의사는 ‘일상생활만 가능하다.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기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돌이킨 박원식은 “다행히 재활을 열심히 했더니 100%에 가깝게 근력을 회복했다. 물론 격한 훈련을 하다 재발할 우려까지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지금은 부상 전과 별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원식의 신장은 181cm이다. 경기가 잡히지 않은 현재 체중은 84kg. 이나마도 최근 몇kg 빠진 것이다. 한창때는 당시 국내 웰터급 선수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체격이었다.
국내 복귀 추진과 함께 라이트급뿐 아니라 페더급 경기에 대한 의지도 밝힌 것에 관해 묻자 “여전히 웰터급을 뛰어도 나쁘지 않은 체격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페더급도 뛸 수 있는 몸이었다”면서 “다시 전처럼 돌리는 것도 감량이라는 자신과의 큰 싸움에서 이긴다면 가능하다. 국내 대회에서는 여건에 따라 페더급·라이트급·웰터급 다 경쟁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로드 FC에서는 페더급 챔피언 최무겸(26)과 길영복(30)·서두원(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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