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목표는 3승, 그리고 우승이라고 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사상 첫 여자월드컵 16강의 꿈을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일본, 북한, 그리고 중국. 만만한 상대는 없었다. 3승은커녕 3패만 안 해도 다행일지 몰랐다. 가뜩이나 객관적인 전력이 처지는데 주축 선수들마저 잃었다. 어두워보였다. 하지만 반전이었다. 1패가 아닌 1승을 했다. 1승,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한국이 이겼다. 만리장성을 넘었다. 역대 네 번째 중국전 승리였다. 지난 1월 극적인 승리도 감격적이었는데, 8월 무더위를 이겨내며 거둔 승리 또한 짜릿했다. 한국은 전반 27분 정설빈의 한방에 힘입어 중국의 콧대를 꺾었다. 홈 텃세를 삼아 사상 첫 여자 동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던 중국은 일격을 당하며 힘들어졌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크게 뒤졌다. 지소연(첼시 레이디스), 박은선(이천 대교), 전가을, 조소현(이상 인천 현대제철)이 소속팀의 차출 반대 및 컨디션 난조 등으로 빠졌다. 한국과 달리 중국은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8강 주축 선수들이 대거 포함됐다.
↑ 한국은 1일 정설빈(흰색 유니폼)의 결승골에 힘입어 중국을 1-0으로 꺾고 2015 여자 동아시안컵 첫 승을 거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결과 뿐 아니다. 내용도 압도했다. 경기를 지켜본 이는 홈팀이 한국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일방적이었다. 경기 시작부터 높은 볼 점유율 속에 밀어붙였다. 시쳇말로 ‘하프 코트’였다. 볼은 중국 진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 선수들은 한국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정설빈의 득점 외에도 결정적인 찬스가 여러 차례였다. 시원한 대승까지 가능했다.
후반은 또 다른 드라마였다. 감동에 가까웠다. 한국은 중국의 반격에 고전했다. 무더위 속 강한 압박에 강철 체력도 탈이 났다. 살림꾼 역할을 하던 심서연(이천 대교)마저 부상으로 쓰러졌다. 골키퍼 김정미(인천 현대제철)도 온몸으로 중국의 공격을 차단했다. 아슬아슬했지만 한국의 골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추가시간 8분이 주어졌음에도.
대회를 앞두고 간판 미드필더 권하늘(부산 상무)은 거수경례와 함께 “감동의 드라마를 펼치겠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자신은 뛰지 않았지만 그 약속을 지켰다. 반전의 승리이자, 감동의 승리였다.
첫 단추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극낭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고비를 이겨냈다. 캐나다 여자월드컵만큼, 아니 그 이상의 경기력을 보
안주하지 않는다. 3승 중 1승을 채웠을 뿐이다. 그리고 남은 2승을 향해 나아간다. 일본, 북한을 상대로 갚아야 할 빚이 남아있다. 감동의 대서사시는 이제 서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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