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지난 9일 잠실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전. 8회초 한화 선두타자 최진행이 헛스윙 삼진으로 돌아서는 순간 탄성이 쏟아졌다. 마운드를 향한 찬사였다.
LG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30)가 노히트노런 대기록 작성에 5명의 타자만 남겨뒀기 때문. 소사는 23명의 타자를 상대로 단 하나의 안타도 사사구도 기록하지 않고 있었다. 소사의 대기록 도전은 24번째 타자인 김경언의 내야안타로 아쉽게 깨졌다.
이날 시즌 개인 최다 투구수인 132구를 던진 소사는 9이닝 4피안타 무사사구 10탈삼진 1실점으로 올 시즌 두 번째 완투승을 기록했다. 비록 KBO리그 13번째 노히트노런은 작성되지 않았지만, 소사의 완투승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 LG 트윈스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가 지난 9일 잠실 한화 이글스전에서 완투승을 거둔 뒤 주먹을 불끈 쥐고 감격하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
양상문 LG 감독은 선발투수 소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전날(8일) 잠실 한화전에서 불펜 출혈이 너무 컸다. 연장 12회까지 가는 시즌 최장 시간 혈투를 벌이며 8명의 불펜 투수를 소모했다. 추격조와 필승조가 모두 마운드 올랐다.
소사가 7~8회까지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은 당연했다. 주 첫 경기부터 불펜이 과부하에 걸리면 마운드 운용 자체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소사는 양 감독의 기대에 200% 부응했다. 8회 1사까지 안타를 맞지 않았다. LG 타선이 2회까지 8득점을 지원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불펜은 무장해제를 해도 될 정도로 푹 쉴 수 있었다.
팀이 필요할 때 그 역할을 해주는 투수가 에이스다. 소사가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신뢰의 두께도 132구만큼 높게 쌓였다.
▲ 자위에 의한 자존심 회복
지난달 6일 대전 한화전. 소사는 자존심을 구겼다. 도미니칸 강속구 투수의 맞대결에서 참패한 것. 한화 새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는 데뷔전에서 9이닝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반면 소사는 5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소사는 더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의 결정은 강판이었다. 소사는 마운드를 내려간 뒤 라커룸에서 글러브를 집어 던지는 등 치밀어 오른 불만을 강한 분노로 표출했다. 이 사건으로 소사는 질책성 2군행 통보를 받았다.
자숙의 시간을 마치고 돌아온 소사는 4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한 뒤 한화를 다시 만났다. 로저스와의 맞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로저스는 전날 8이닝 5실점(4자책)으로 부진한 투구 내용을 보였다. 하루 차이로 마운드에 선 소사는 보란 듯이 완투승을 기록했다.
소사는 구겼던 자존심을 회복하며 위로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스스로 해냈다.
▲ 재계약 ‘그린라이트’
LG는 외국인 선수들의 재계약을 놓고 고민 중이다. 두 외국인 투수 소사와 루카스 하렐,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는 모두 재계약의 경계선에 있다. 양상문 감독은 재계약과 관련해 “후반기에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긍정적으로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
이 가운데 재계약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는 소사다. 올 시즌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날 완투승은 그린라이트를 켠 화룡점정이었다.
소사는 올 시즌 27경기에서 9승10패 평균자책점 3.93을 기록 중이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6번의 퀄리티스타트를 올렸고, 완투승(완봉 1회)도 두 차례 기록했다. 특히 후반기 8경기에서 2승2패 평균자책점 3.00을 찍었다. 9월 2경기 평균자책점은 1.13에 불과하다. 시즌 막판 오히려 페이스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재계약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수치다.
▲ 포기했던 기적을 꿈꾸다
사실상 가을야구 포기 단계였던 LG는 기적의 연결고리가 생겼다. LG는 여전히 9위에 머물러 있지만, 5위 다툼이 치열한 중위권 경쟁에서 완전히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5~8위 팀들은 현재 진흙탕 싸움 중이다.
17경기를 남긴 LG는 5위 롯데와 5경기차로 벌어져 있다. 롯데를 제외하면 한화(6위) KIA(7위) SK(8위)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세 팀 모두 최근 10경기에서 3승7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요즘 흔한 연승과 연패의 갈림길에 따라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
LG는 이번 주 남은 원정 성적이 마지막 실낱같은 기
LG의 가을야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기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9위 탈출과 함께 순위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는 뒷심을 얻었다. 소사가 던진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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