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대만, 타이베이) 김원익 기자]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경험한 백전노장의 경험은 승부처에서 다시 한 번 빛났다. 대회 내내 이어지고 있는 신들린듯한 용병술. 교체 승부수는 또 통했다.
“페넌트레이스와 국제대회와 같은 단기전 운용은 달라. 물론 결과가 잘 나온 것 뿐이야. 하지만 고민은 많이 하지.”
김인식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감독의 말이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16일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구장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12(프리미어12) 쿠바와의 8강전서 7-2로 승리,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정도면 신들린 듯한 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김 감독 스스로는 ‘결과론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을 가진 명장의 과감한 선택은 곳곳에서 빛났다. 우연이 아닌 정확한 판단과 고민으로 쟁취한 귀중한 결과다.
▶ 장원준->임창민->차우찬->정대현->이현승, 성공적
여러모로 한국 벤치의 빠른 판단과 교체가 돋보였다. 김 감독은 이번에도 많은 실점을 하지 않은 선발투수를 조기에 교체하는 퀵후크(3시점 이하 투수를 6회 이전에 마운드서 내리는 일)을 택했다. 이는 쿠바의 추격을 막고 흐름을 다시 한국쪽으로 가져오는 성공한 전략이 됐다.
↑ 김인식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감독의 용병술이 다시 빛났다. 사진(대만, 타이중)=천정환 기자 |
그리고 5회. 장원준은 선두타자 마예타에게 안타를 맞은데 이어 후속 바스케스에게도 볼넷을 내줬다. 후속 에르난데스에게 적시타를 맞고 첫 실점을 했으나 민병헌이 3루에 정확한 송구를 연결, 선행 주자를 아웃시켜 한 숨을 돌렸다. 후속 만돌레이를 낮은 코스의 속구로 루킹삼진 처리한 장원준은 하지만 후속 R.구리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다.
그러자 지체없이 대표팀 벤치가 움직였다. 투구수 66개서 호투하던 장원준을 과감히 내렸다. 임창민은 후속 유니에스키 구리엘에게 적시타를 맞았지만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땅볼로 아웃시키고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이날 경기 승부처라고 봤던 것. 김 감독의 기대대로 한국은 추격하던 쿠바의 공격을 막아내고 이후 흐름을 가져왔다. 이후 임창민은 6회 등판해 2명의 타자를 범타 처리했고, 6회 2사 주자없는 상황 김 감독은 이번 대회 불펜 투수 중 가장 좋은 구위를 자랑하는 차우찬을 올렸다.
이 선택은 적중했다. 이후 차우찬은 깔끔한 투구내용으로 쿠바의 기를 다시 한 번 눌렀고, 한국은 추가점을 뽑아 경기 승부를 갈랐다. 8회 말 차우찬이 선두타자 2루타를 맞으면서 흐름이 또 바뀌었다. 그러자 김 감독은 지체없이 정대현을 마운드에 올렸다. 정대현은 기대에 100% 부응. 쿠바를 삼진, 땅볼, 뜬공으로 솎아내고 실점을 하지 않았다. 9회 1사 이후 김 감독은 대표팀 마무리 이현승을 올렸다. 이현승은 안타 1개를 맞았지만 아웃카운트 2개를 잘 잡아내고 경기를 매조졌다.
▶ 국가대표 지휘봉 노장이 말하는 국대 운용법
1998년 이후 김인식 감독은 이번 대회까지 국가대표 지휘봉을 총 4차례 잡았다. 그야말로 백전의 경험이다. 성적도 매우 준수하다. 4강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서 6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후 2006년 제 1회 WBC 감독을 맡아 6승1패를 기록, 야구 월드컵 성격의 초대 대회서 4강의 쾌거를 올렸다. 이후 2009년 제 2회 WBC 지휘봉을 다시 잡은 김 감독은 준우승을 견인했다.
이후 프로팀 감독 자리도 내려놓고 야인의 길을 걸었던 김 감독은 이번 대회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간 현장 공백에 대해 우려도 물론 있었다. KBO 기술위원장으로 꾸준히 야구계에 몸을 담았지만 현장 경험과는 다르다는 지적. 그런데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냉철한 승부사’의 감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일본과의 개막전이었던 일본과의 경기부터 선발투수 김광현을 3회도 채우지 않은 시점에서 내렸다. 1,2회 컨디션이 매우 좋았던 김광현이기에 다소 의외였던 선택. 김 감독은 “투구수 60개 이후로 김광현의 공에 힘이 떨어지더라. 투구 템포도 좋지 않았고, 타자와 승부를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며 이 교체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김 감독은 “페넌트레이스와 단기전의 경험은 투수교체는 확연히 다르다. 국대 지휘봉을 처음 잡는 타자들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며 “단기전에서는 일반적인 구상이 아닌 현 상황에 맞춰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차전 영패로 비록 이 용병술은 가려졌지만 이후 김 감독은 2~4차전을 3연승으로 장식하며 8강행을 확정했다. 5차전 미국과의 경기서도 타선 침묵으로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패했지만 투수교체 이후 상대 타선을 봉쇄하는 흐름은 이어졌다.
실제로 2차전부터 대표팀 구원진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도미니카와의 2차전 8회부터 등판한 정대현과 이현승이 2이닝을 1탈삼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틀어막았다. 이어 베네수엘라와의 3차전서도 선발 이대은에 이어 등판한 우규민과 이태양이 2이닝 동안 안타 2개만 허용하면서 역시 무실점 투구로 콜드게임승리에 기여했다.
멕시코와의 4차전은 특히 불펜진의 역투가 돋보였다. 이태양이 3이닝 2실점으로 내려간 이후에 임창민-차우찬-정대현-이현승이 도합 6이닝을 무자책으로 완벽하게 막고 짜릿한 1점 차 승리를 견인했다.
5차전서도 선발 김광현 이후 4명의 구원투수는 도합 4⅔이닝을 무실점으로 꽁꽁 틀어막았다.
이런 조기교체의 배경은 무엇일까. 김 감독은 “만약 선발투수가 6~7회까지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확실히 있다면 그들에게 경기를 맡길 것이다. 하지만 대회 이전에 부상과 여러 상황들로 전력 누수가 있었고 현재 멤버들로 6~7회를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면서 “상황에 따라서 그에 맞게 운용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회 운영이 잘 들어맞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결과론일 뿐이다. 결과가 좋게 나왔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복잡한 상황속에서 고민은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대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 불펜투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막아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투수들이 모두 잘하고 있다. 이들도 큰 경험이 됐을 것”이라며 구원투수들을 격려했다.
16일 경기 전에도 그 뜻은 확고했다. 김 감독은 “이 경기를 이겨야 다음이 있고 8강이 있다. 모든 불펜을 총동원해서 승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투수교체 타이밍이 빠르고 늦고는 모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지금까지는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8강전 승부서도 이런 김 감독의 충분한 단
이번대회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 마운드라는 오명을 씻어내며 선전하고 있다. 오히려 강력한 마운드가 대표팀의 현재 컬러. 투수들의 선전과 함께, 김 감독의 용병술도 이런 모습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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