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대방동) 윤진만 기자] 한때 ‘만 시간 법칙’이 유행했다.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만 시간 이상 투자하라는 내용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김병지는 축구 전문가, 아니 박사다. 프로 데뷔 이후 경기장에 쏟아 부은 시간만 6만 시간(706경기). 축구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몸을 만든 시간까지 합하면 지금껏 인생 대부분을 축구와 함께 살았다.
프로 생활 24년 동안 수천 명의 선수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수백, 수천 가지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돈 주고는 못 살 경험을 얻었다. ‘구력’, ‘내공’만큼은 K리그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 척 보면 안다.
↑ K리그 레전드 김병지가 14일 2016년 K리그 신인들 앞에 섰다. 사진(서울 대방동)=천정환 기자 |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들에겐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해줄 것 같은, 물어보지 않아도 표정만 보고도 해답을 내려줄 것 같은 선생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14일 2016년 K리그 신인선수 교육 현장에서 마주한 김병지는 최고의 동기부여 전문가였다. 자기계발서로 엮어도 모자람이 없는 알찬 내용으로 청중의 가슴을 울렸다. 신인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 몇 가지를 추려서 소개한다.
○ 후배들아 유혹을 뿌리쳐라
“1996년 마지막으로 나이트클럽에 갔다. 평생 마신 술은 맥주, 소주 각 한 병 정도 될 거다. 후배들아,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무슨 유혹을 말하는지는 너희는 알 거다. 작심삼일을 실천해야 한다. 유혹을 이겨낼 때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진다.
겉멋이 들어 고급 외제차를 타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지방에 있다면 서울로 올라가서 멋도 내고 싶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도 깨지고, 돈도 깨진다. 밤늦게 올라갈 테니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산 10억원을 모으고, 연봉 2~3억원 정도 받을 때 멋을 내도 늦지 않다. 운동 외 시간에 여행하던가, 책을 읽는 건 어떨까?”
○ ‘최선’은 누구나 다 한다
“프로에 처음 온 신인들은 다 이렇게 말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말 없느냐고 하면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론 안 된다. 프로는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후배들은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 김병지는 아들뻘 후배들에게 "죽을 힘을 다해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사진(서울 대방동)=천정환 기자 |
시도민구단 한 팀에 선수가 50명이 있을 때가 있었다. 3년 뒤 5명만 남고 40명이 물갈이됐다. 그 선수들은 한 단계 낮은 팀, 한 단계 낮은 리그로 갔다. 가능성을 보이지 않으면 없어질 수도 있다.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몸과 마음이 고통을 느낄 때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적게는 10년, 많게는 15년 축구를 해왔을 텐데 1~2년 더 노력하지 못한다면 너무 아깝지 않나?”
○ 필살기 하나쯤은 만들자
(먼저 두 명의 선수를 찍었다. 한 명은 192cm 중앙 수비수, 다른 한 명은 175cm 측면 공격수였다.) “팁을 주겠다. 먼저 키 큰 친구. 우리나라에서 헤딩을 제일 잘하면 빌드업 능력이 평균 이하여도 무조건 성공한다. 다른 친구는 90분 뛸 체력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공을 자주 뺏기더라도 수비수 한 명을 제쳐서 크로스를 올리는 능력이 있고, 한 시즌 10개의 도움을 올린다면 이 선수도 무조건 성공한다.
골 냄새 정말 잘 맡으며 10골 이상 넣어주는 센터포워드는 감독들이 무조건 기용한다. 공은 잘 못 차지만 상대 맥을 잘 끊는 김남일과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는 감독이 원하는 포지션에 있다. 이처럼 한 가지 확실한 스킬 만들어야 한다. 남들에겐 없는 자기만의 스페셜한 스킬을 밤낮없이 노력해서 만들어야 한다. 머릿속에 각인해두길 바란다.“
○ 기다려라, 기회는 온다
“전남에 이슬찬이라는 선수가 있다. 프로 데뷔 후 2년 동안 1~2경기밖에 못 뛴 선수다. 올 시즌 훈련장에서 워낙 열심히 했다. 노상래 감독이 대타로 한 번 기용했는데, 이슬찬은 그 기회를 잡았다. 지금은? 올림픽 대표팀에 가 있다.
여러분은 동계훈련에 가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선수들이 같은 포지션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인내하라. 감독은 포기하고 겉도는 선수가 아니라 노력을 많이 하고 준비된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 나는 대신 들어간 그 한 경기로 인해 인생을 바꾼 선수를 정말 많이 봐왔다.“
↑ 김병지 자신이 도전의 상징이다. 지난 7월 전무후무한 K리그 700경기를 달성했다. 사진=MK스포츠 DB |
○ 나 자신부터 이겨라
“내가 부상으로 결장할 때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면 심리적으로 쫓긴다. 이건 전 세계 모든 축구선수의 공통점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없다고 전남에 문제가 생길까? 천만에. 다른 누군가가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여러분들은 남과의 경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누구 때문에 안 됐다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 아닌가. 축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와의 경쟁에서 이기면 남은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지면 남한테도 다 진다.”
○ 그래도 계속 가라
“요새 ‘그래도 계속 가라’는 책을 읽는다. 슬퍼져도 계속 가라는 거다. 인생에는 좌절도 있고 실망도 있고 기쁨도 있다.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걸 안다. 어려움을 겪고, 다양한 과정을 밟은 뒤 대표팀에 뽑힌 선수가 롱런한다. 박지성을 보라. 대표팀에서 처음 훈련할 때, 선수들은 ‘몸이 이래서 국가대표를 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박지성은 성실하게 계속 갔고, 세계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 김병지가 언급한 "그래도 계속 가라"에서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한결같이 말한다. 아프고 슬프고 넘어져도 그래도 계속가라고, 더 높은 곳을 보라고, 도전을 멈추지 말라고. 사진=윤진만 |
넘어질 용기가 없으면 넘어질 생각을 하지 마라. 올라갈 용기가 없으면 도전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앞으로 계속가길 바란다. 1년 동안 죽도록 한번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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