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서로 두루두루 붙어본 올해 개막 초반 이후, 대부분의 팀들은 대부분의 팀들을 ‘만만하게’ 봤다. 뚜껑을 열고 보니 개막 전 예상했던 전력보다 무서운 팀이 드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딱히 버겁지 않아서 “다들 별로 세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단, “두산만 빼고…….”
2016시즌 페넌트레이스의 두산은 그렇게 ‘특별하게’ 센 팀이었다. 모두가 느꼈던 위압감은 숫자로 남았다. 28일 대전 한화전에서 12-3으로 대승하면서 두산은 KBO의 역대 팀 한 시즌 최다승인 91승(48패1무)을 돌파했다.
두산에게 어깨를 내준 91승 기록의 첫 주인은 2000년 현대다. 그들은 얼마나 ‘특별하게’ 강했으며, 두산과는 어떻게 다른, 혹은 닮은 91승 레이스를 펼쳤을까.
↑ 두산이 28일 대전에서 KBO 시즌 최다승 타이인 91승을 달성했다. 아직 4경기를 더 남기고 있어 새 기록이 기대되고 있다. 사진(대전)=김재현 기자 |
강력한 선발진은 역시 강팀의 첫째 조건이다. 올해의 두산에게 ‘+15승’의 에이스 그룹인 ‘F4’가 있다면, 16년 전의 현대에겐 다승왕 트리오가 있었다. 정민태-임선동-김수경이 나란히 18승을 따내면서 리그 역사상 유일했던 한 팀 세 명의 공동 다승왕을 배출했다.
당시 현대 마운드는 이에 더해 홀드왕 조웅천과 세이브 2위(39S) 위재영이 불펜을 지키면서 단단한 경기를 했다. 리드하는 경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비정한 작전으로 몰아붙이는 김재박 감독의 철저한 승부사 스타일과도 맞물려 역전패가 극히 적고, 역전승도 많지 않은 견고한 레이스를 펼쳤다. 줄곧 불펜 고민이 ‘옥에 티’였던 올해의 두산에 비해 좀 더 안정감있고, 좀 덜 다이내믹한 컬러였다고 할 수 있다.
2000년은 ‘40홈런 포수’ 박경완이 4연타석 홈런 기록을 쏘았던 해다. 리그 최초의 스위치히터 타격왕 박종호가 59경기 연속출루 신기록을 세우고, 박재홍이 세 번째 ‘30(홈런)-30(도루)’을 작성했던 해이기도 하다. 이들은 홈런(박경완)-타점(박재홍)-타격(박종호)의 3대 타격 타이틀을 합작 싹쓸이하면서 외인 타자들이 부진과 교체를 거듭했던 2000년 현대 타선을 이끌었다.
▶ 1986년 이후 30년간의 최고 승률 0.695
133경기에서 91승(40패2무)을 따낸 2000년 현대의 승률은 7할을 넘봤다. 이는 팀간 전력차가 극심해 1할대~3할대 승률의 꼴찌 팀들이 나오던 리그 출범 초기의 기록을 제외하면, 최근 30시즌 동안의 최고 승률이다.
사실 레이스는 현대의 창단 첫 우승 해였던 1998년(81승45패)이 더 완벽했다. 초반부터 확실하게 독주했던 ‘1998현대’는 4연패가 없었고, 3연패도 두 차례 뿐이었다. 5명의 선발투수가 모두 10승을 넘겼고, 4번타자 쿨바의 존재감이 무시무시했다. 그에 반해 2000년 현대는 5월에 일찌감치 5연패를 겪어냈고 시즌 내내 4번타자를 고정하지 못했다. 4, 5선발 자리는 여타 ‘평범한’ 팀들처럼 돌려막았다.
그러나 2000년 현대는 2년전 보다 승률, 승수, 2위와의 게임차에서 모두 한걸음 더 나아갔고, 한여름 이후의 페이스는 압도적이었다. 조목조목 내세울 장점은 1989년 현대가 더 많았지만, 뭘해도 이길 것 같은 포스는 2000년 현대의 기세가 더 등등했다. 우승 후 김재박 감독은 “운이 좋은 시즌”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좀처럼 지지 않는 좋은 기운이란 역시 ‘91승 기적’의 필요조건이다.
↑ 2000년 현대 타선의 주역들은 코치와 해설가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왼쪽부터 2000시즌 MVP였던 박경완 SK코치, 타점왕 박재홍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9번타자로 15홈런을 기록했던 박진만 SK코치, 타격왕 박종호 LG코치. 사진=MK스포츠 DB |
2000년 현대를 기록으로만 들여다보는 요즘 야구팬들은 화려한 스타군단의 예견됐던 우승 시즌이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 현대는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냈던 ‘이변의 팀’이다. 가을야구에 실패했던 1년전 전력에서 뚜렷한 보강이 없었던 그들은 직전 2시즌동안의 1승 투수였던 임선동을 3선발로 내세웠고, 타자 1년 공백의 심재학을 ‘10승 투수’ 최원호와 바꿨으며 허리부상 전력의 위재영을 초보 마무리로 돌려세웠다. 곳곳에 변수 투성이라 개막전 전문가들의 평가는 4강권 턱걸이 전력이었다.
그러나 임선동은 투수 2관왕(다승 탈삼진)으로 우뚝 섰고, 심재학은 첫 시즌 20홈런을 돌파했다. 위재영은 39세이브를 낚았다. 포수 박경완과 키스톤콤비 박진만-박종호가 나란히 각자의 시즌 최다 경기수를 돌파한 것도 ‘대박’이었다. 이들이 120경기 이상 내야의 ‘삼각축’을 지켜주면서 탄탄하게 안정된 수비는 최강 현대의 막강한 경쟁력이 됐다. 타격왕 박종호, 초대 홀드왕 조웅천 등 시즌 전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고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어낸 스타들의 탄생도 ‘91승 신화’를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챔프팀 두산은 2000년 현대보다는 시즌 전 평가가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현수(볼티모어)가 떠났고 풀타임 마무리 첫해의 이현승이 변수로 꼽히는 등 개막전의 예상은 ‘압도적’이지 않았다.
16년전의 현대처럼 막상 막이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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