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프로야구 35번째 시즌은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기분 좋은 기억이 훨씬 많겠지만 기분 나쁜 기억이 더 강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박’이 화두로 떠올랐고, ‘승부조작’이라는 대형폭탄까지 터졌다. 희망과 밝음을 노래하기에는 충격과 상처가 너무 크다. 부패의 온상이다. 꽁꽁 숨기려했던 프로야구의 속살은 예상보다 더 심각하게 썩었다.
야구계는 ‘밝은 날’만 오기를 바랐다. 잔칫상은 차려졌다. 서울과 대구의 신축 구장 개장과 함께 흥행바람이 불어 사상 최초 8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정규시즌 총 833만9577명으로 지난해(736만530명) 세웠던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웠다. 1년 전보다 100만명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5월 5일에는 역대 1일 최다 관중 신기록(11만4085명)을 달성했다.
의미 있는 성적과 기록도 쏟아졌다. 두산은 다른 9개 팀을 압도하며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다. 38이닝 2실점의 전승 우승. 본격적인 두산 왕조의 시대를 알렸다.
↑ 2016 프로야구는 흥행 바람이 거세게 불어졌다. 하지만 각종 악재가 터지면서 잔칫상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진=MK스포츠 DB |
1년 내내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남들과 달랐던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행보는 시즌 내내 시끄러웠다. 부정적인 이슈가 없지 않았다. 다른 쪽에선 추태가 있었고 몰상식도 있었다. 금지약물 복용, 음주운전 적발 등은 올해도 빠지지 않은 뉴스였다.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추위, 태풍 등 천재지변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 돌발변수는 없었다. 예기치 못한 악재는 없었다. 하나 같이 인위적이었다. 누구의 잘못과 오만, 무지 등이 모여 만들어졌다.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부주의가 아니다. 검은 뿌리를 뽑지 못했던 모두의 잘못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개막 전 해외원정도박 스캔들로 시끌벅적했다. 삼성의 윤성환, 안지만은 뜨거운 감자였다. 그리운 야구장에 돌아왔지만 논란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 개설 연루 혐의를 받은 안지만은 삼성과 계약을 해지했다. 검찰은 지난 8월 둘의 해외원정도박 혐의에 대해 참고인 중지 처분을 했지만, 무혐의 확정이 아니다.
도박 이야기는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대상 범위도 확대됐다. 지난 7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의 승부조작 관련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밖에서만’ 몰랐던 사실이 밝혀졌다.
현역 투수 2명은 ‘과거’ 불법 스포츠 베팅을 했다. 단순 도박이라 해도 자신이 뛰는 무대를 대상으로 했다. 엄연한 불법이다. 공소시효가 끝나 불기소가 될 가능성이 높으나 그들이 도덕적으로 용서 받는 건 아니다. 5년 전으로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내년에도 그들의 직업은 야구선수다.
그리고 더 드러나지 않을 뿐,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안으로는’ 흉흉한 말도 돈다. 더 깊숙하게 뻗은 어둠의 손길이 있을지 모른다. 선수들의 도덕적 해이는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7월에는 승부조작의 태풍까지 불었다. 그라운드에 정정당당한 승부가 펼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4년 만에 드러났다. 대가를 받고서 고의적으로 조작했던 이들이 하나둘씩 법적 처벌을 받아야 했다.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19명이 검거됐다. 그리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2명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4개월 후 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구단이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3개월 전 모든 걸 떳떳하게 공개하고 수사에 협조하겠다던 야구계였다. 말과 달리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것이 야구계가 그토록 주장했던 클린 베이스볼, 페어플레이였을까. 으레 당연한 의무였다. 하지만 권리만 누렸다.
KBO리그는 35번째 시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최고의 해로 기억할 이가 얼마나 될까. 내년에는 900만 관중을 꿈꿀까. 오히려 자초한 위기로 역풍을 우려할 수도. 누군가는 진절머리가
35번째 시즌은 두산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즐겁지 않다. 개운하지도 않다. 해피엔딩은 아니다. 게다가 찝찝하다. 이 불편하고 불쾌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끄러운 야구계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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