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 대표팀의 에이스 오오타니 쇼헤이(22·닛폰햄)는 지난해 ‘프리미어12’ 대회에서 시속 160km의 광속구를 선보이며 우리 대표팀 타자들을 힘들게 했던 선수다. 전력분석팀으로 일했던 당시 대회 현장에서 오오타니의 투구를 보며 공포를 느꼈고, 한편으로는 참 부럽기도 했다.
내년 3월에 열리는 2017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일본 대표팀은 이번주 멕시코, 네덜란드와 잇달아 평가전을 치르고 있다. 대표팀 전력분석위원으로서 10일과 11일의 도쿄돔 멕시코전을 지켜봤다.
↑ 일본 대표팀의 평가전 시리즈에서 타자로 맹활약 중인 오오타니는 6번 지명타자로 출전한 12일 도쿄돔 네덜란드전에서는 메이저리그 통산 53승 투수인 자이어 저젠스에게 5회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사진(일본 도쿄돔)=AFPBBNews=News1 |
사실 오오타니는 올해 일본프로야구에서 타자로서도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10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2 22홈런 67타점을 기록했으며 히로시마와의 일본시리즈에서도 팀의 붙박이 3번 타자로 활약하며 닛폰햄 10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 드라마에 큰 역할을 했다.
투수로도 타자로도 프로 최정상의 선수로 성장한 오오타니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다. 그러나 혹시 우리 야구에서도 드물게 나올 수 있는 재능인데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거나, 그 길을 막고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현재 중학교 야구부 중에는 투수와 야수로 나뉘어서 훈련하는 팀들이 많고 경기에 출전할 때도 투수와 야수로 명확히 구분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꼭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너무 급하게 진로를 제한하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다. 만에 하나, 선수가 투수와 타자, 어느 쪽에 더 재능이 있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을 때는 후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고 야구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스스로 ‘나는 투수니까’ ‘나는 타자니까’ 단정 짓는 경우도 보인다. 그러나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은 쉽게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한 가지 포지션으로 일찍 결정한 이후 실력이 모자람을 느끼고 포기하는 경우가 사실은 다른 포지션에 대한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결과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중후반에는 투수가 4번타자를 하는 경우가 꽤 흔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가장 잘하는 친구가 투수를 맡고 그 다음에 유격수, 중견수 등으로 포지션을 나누기 때문에 확률적으로도 투수가 운동신경이 좋은 경우가 많다. 투수를 잘 하는 아이가 타격을 잘 하는 경우는 상당히 흔한 편인데 선수의 희망, 혹은 당시 팀의 사정 등 여러 요인으로 한쪽으로 빨리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러나 충분한 확신이나 필요가 생기기 전까지는 쉽게 한쪽을 포기하지 말고 투구와 타격,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잘못된 선택의 확률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프로에 와서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재능의 꽃을 피우는 선수들을 종종 보게 된다. 당연히 선수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한 결과지만, 그 선수의 잠재력이 어떻게 발현됐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중에는 포지션을 바꾸어 새로운 야구 인생을 펼친 선수들이 있다. 포수를 하다가 외야수로 바꾼 후 강타자가 되거나, 투수를 하다가 부상 혹은 다른 여러 이유로 타자로 전향해 성공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방황을 어린 나이에 치렀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더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조금 더 열린 가능성, 덜 힘들 기회를 가진 어린 선수들일 때 다양한 포지션을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일찌감치 투수로 진로를 결정한 어린 선수가 타격 훈련을 소홀히 하는 것(혹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방치하면서 우리가 혹시 모를 위대한 타격 재능을 잃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도자와 부모들은 어린 선수의 재능을 확신하기까지 좀 더 시간을 갖고 꼼꼼히 살펴보고, 선수 자신은 스스로를 더 잘 알고자 하는 노력을
코끼리를 사육할 때 새끼의 발목에 줄을 매어 놓으면 자라서도 주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야구가 섣부른 판단과 고정 관념보다 열린 판단과 관찰로 키워낸 어린 선수들이 그들의 빛나는 재능을 적소에서 발휘할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