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황석조 기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불세출의 타자. 푸른 피의 사나이. 하지만 양준혁(49)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겸 재단법인 양준혁 야구재단 이사장은 이제 TV에 나오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 혹은 좋은 일 많이 하는 은퇴한 야구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라운드를 떠난 지 어느덧 7년 째. 양준혁 위원은 그렇게 묵묵히 또 다른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선수 때 보다 더 바쁜 삶
양 위원에게는 시즌과 비시즌이 따로 없다. 오히려 선수 시절보다 활동량이 늘어나고 만나는 사람도 많아졌다. 술도 잘 못하고 골프도 뛰어난 실력이 아니지만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고 열의를 다해 참석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양 위원이 운영하고 있는 재단법인 양준혁 야구재단을 위함이 크다. 양 위원 혼자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운영이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잠시라도 틈이 나면 사람들을 만나고 발로 뛴다. 야구대회, 멘토리 야구단, 야구캠프, 자선대회 등. “쉬는 날은 거의 없다. 정말 선수 때보다 더 열심히 사는 것 같다”는 그의 너스레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해설자로서 또 재단 이사장으로 은퇴 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종로)=옥영화 기자 |
양 위원도 선수 때는 다른 이들과 같은 꿈을 꿨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성공적 커리어를 마감한 뒤 코치, 나아가 사령탑까지 오르는 미래를 그린다. 양 위원도 이를 위해 2010년 은퇴 당시부터 지도자 과정을 준비했다. 삼성 구단과 협의해 메이저리그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에서 연수까지 계획했다. 그러던 때 삼성 구단으로부터 성대하게 치러진 은퇴경기 수익금 3000만원을 받게 됐고 이 돈이 양 위원의 인생을 바꿨다.
양 위원은 “제 은퇴경기를 보기 위해 팬들이 소중한 티켓을 사줬다. 의미 있는 돈 아니겠냐. 의미 있게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양 위원은 “그 돈으로 청소년야구대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참가한 청소년들이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니겠냐. 눈물을 흘리는 학생도 있었다.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당시 감정을 떠올렸다. 단순 이벤트로 시작한 행사는 그렇게 양 위원에게 운명이 됐다.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대회는 어느덧 올해 8회 째를 맞이한다.
▲가지 않는 길
의문이 들었다. 왜 편안하고 또 야구인으로서 더 인정받는 길을 마다했는지. 양 위원 스스로도 부인하지 않을 만큼 어렵고 힘든 길이 분명했다. 다만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실질적으로 스포츠스타들이 은퇴한 뒤 밟는 코스가 단순하다. 지도자 외에는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렇지만 밖에 나와서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밖에 나오니 할 일이 굉장히 많더라. 너무 제도권 안에서만 있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소신을 밝혔다. 양 위원은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 길이 힘들더라도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후회는 없다
양 위원에게 진심을 물었다. 후회한 적은 없을까. 그는 단호했다. “단 한 번도 (은퇴 후 선택을) 후회한 적 없다”며 “많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렵고 힘든 길일지라도. 이 길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양 위원이 꺼내든 말은 아이들이었다. 양 위원은 “배우는 학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에게 기쁨이 되더라. 어떤 학생은 수줍어하며 “효도하겠습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재미있다. 또 보람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잠시 동안 먹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른 길에 대한 생각이 지금껏 전혀 안 떠올랐다고 말하면 거짓말일거다. 하지만 지금 하는 나의 일들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 확신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 양준혁 위원은 재단을 통해 각종 야구대회 및 멘토링, 캠프 등을 개최하며 야구의 저변을 넓히고 학생들에게 꿈을 키워주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양 위원은 은퇴가 임박했거나 혹은 언젠가 다가올 후배들에게 넓고 긴 생각을 펼쳐보이라 조언했다. 그가 생각했을 때 은퇴 후 야구인의 길은 한 두가지로 정의될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선수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다. “다들 (은퇴 후) 너무 길이 좁다. 다양한 생각이 필요하다. 다양한 선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양 위원은 “정말 (할 일이) 많다. 야구 (관련)사업을 해볼 수 있고 스포츠용품관련 일을 할 수도 있다. 에이전트 제도도 실시될 예정이며 재능을 살리는 자선 활동도 언제나 필요하다”며 무한한 야구인의 길을 몇 가지 예로 설명했다. 뭐든지 “해볼 만하다”…양 위원이 수차례 강조한 말이다.
▲적극적 방송출연도 의미 있어
양 위원이 은퇴 후 친숙한 이미지를 만든 데에는 방송출연의 역할이 컸다. 인기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이를 발판삼아 고정 프로그램까지 꿰찬 적도 있다. 재단 활동으로 방송에만 다 걸기를 할 수 없지만 최근에도 몇 년 째 고정프로로 얼굴을 비추면서 대표적인 스포츠스타 출신 방송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방송을 대하는 양 위원의 자세는 매우 적극적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나아가 현재도 의미가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언제든지 출연하고 싶다고 한다. “방송활동을 하면 본인가치로 올라가지만 야구에 대한 이미지도 올라간다. 야구가 붐업을 이루던 2000년대 후반 당시, 연예인과 야구를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화제가 됐었다. “야구가 실제로 재미있는 스포츠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본다”며 방송이 끼친 긍정적 영향력을 설명했다. 물론 양 위원은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됐다. 과거에는 야구 매니아분들만 저를 알아봤다면 지금은 남녀노소가 많이 사랑해주신다”고 친근한 이미지에 싫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위기 감지된 국내야구, 아마야구에서 답 찾아야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양 위원은 현장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다. 그가 말하는 스케줄 중 가장 최우선은 해설위원으로서 활동. 한 발 떨어져서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양 위원은 선배로서 현재 야구계를 발전시킬 원동력은 아마야구 성장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지금 아마추어 야구가 너무 죽어있다. (좋은) 투수가 안 나온다. 아마야구가 죽어가다 보니 선수들이 좋은 기량의 선수들이 나오고 있지 않은 것이다”고 안타까워했다. 양 위원의 지적처럼 국내야구계는 800만 관중이라는 빛 아래 여러 위기요소가 내포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부진까지 겹치며 질타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한데 양 위원은 이를 아마야구에서 찾자고 강조했다.
↑ 양준혁 위원은 은퇴를 앞둔 후배들에게 제도권이 아닌 외부의 다양한 삶에도 눈을 돌려보라고 조언했다. 사진=MK스포츠 DB |
유럽이나 영미권에서는 은퇴한 세계적 스포츠스타들이 자선활동이나 재능기부 활동에 적극적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각종 의미 있는 활동으로 제 2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이전에 비해서는 늘어났지만 여전히 그 비율이 높지 않다. 그저 “좋은 일 하네” 혹은 “하던 일을 해야지”라는 인식 속에 가두는 경
그러나 양 위원은 말한다. “할 일은 많다”고. 그는 생각을 다양하고 넓게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언뜻 달라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같은 일. 양 위원이 생각하는 은퇴 후 야구인이 걸어야 할 또 다른 야구인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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