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KBO리그는 최근 10년 동안 좌완 투수들의 전성시대였다. 올해 초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김인식(71) 감독이 “뽑을만한 우완 선발투수가 없다”고 장탄식을 할 정도로 에이스급으로 꼽히는 우완투수가 없었다. 2000년대 초중반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었다. 배영수(36·현 한화) 박명환(40·전 NC) 등 20대 영건들이 벌이는 대결은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0년 중후반부터 좌완 선발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2006년 한화 이글스 류현진(30·현 LA다저스)이 KBO리그 사상 첫 신인왕-정규시즌 MVP를 동시 수상한 이후 김광현(29·SK), 양현종(29·KIA) 등 좌완 에이스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다승 5위 안에 든 투수들 중에 나란히 15승을 챙긴 장원준(32)과 유희관(31·이상 두산)이 눈에 띈다. 4년 총액 95억원에 FA(자유계약선수)로 삼성에서 LG로 이적한 차우찬(31)도 좌완 에이스로 불릴만하다. 반면 이 기간 중 우완 에이스들이 차지했던 자리는 외국인 투수들에게 넘어갔다. 지난해만 해도 다승 1위가 22승을 거둔 더스틴 니퍼트(36), 2위가 18승을 거둔 마이클 보우덴(30·두산)이었다. 2011년 KIA 윤석민(31)이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는 등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에이스로 발돋움했지만, 이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좌투수들의 전성시대에는 좌타자(특히 우투좌타)들의 대거 등장이 한몫했다는 시선도 많다. 한국의 인구 중 오른손잡이는 95%이고, 왼손잡이는 5%에 불과한데, 야구에서만 왼손잡이가 유독 많은 이유를 야구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 접근한 분석이다. 아무래도 타석에서 1루까지의 거리가 우타석에 비해 좌타석이 가깝기 때문에 우투좌타들이 늘었고, 이에 맞춰 왼손투수의 육성도 비중이 커졌다는 얘기다.
↑ 우완 영건 중 가장 돋보이는 투수가 롯데 박세웅이다. 평균자책점 1.78로 2위에 위치한 박세웅은 올 시즌에 목표로 세운 두자릿수 승리와 규정이닝 소화를 무난하게 달성할 전망이다. 올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4세 이하 아시아야구 챔피언십에 참가할 국가대표팀에 뽑힐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 ERA 1.78 박세웅·1.82 임기영…1.34 임찬규, 그리고 돌아온 한현희
특히 2, 3위에 나란히 오른 박세웅과 임기영이 눈에 띈다. 박세웅은 평균자책점 1.78로 2위, 임기영은 1.82로 3위에 올라있는 상황이다. 1위 라이언 피어밴드(32·kt)의 1.69와 비교해봐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현희는 2.55로 8위에 위치해 있다.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했지만 임찬규(25·LG)는 평균자책점 1.34의 호투를 펼치고 있다. 7경기에서 4승(1패)을 챙겼고, 최근 4경기에서는 6이닝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장외’ 평균자책점 1위라는 얘기도 나온다.
박세웅은 올 시즌 롯데 3선발로 일찌감치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간 투수다. 2014년 kt에 1차지명으로 입단해, 2015시즌 초반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했다. kt시절부터 미래의 에이스로 꼽혔던 투수지만, 2015년 1군 첫해에는 선발과 중간을 오갔고, 지난해 풀타임 선발로 던지며 7승12패 평균자책점 5.76으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냈다. 139이닝을 소화해 규정이닝(144이닝)도 아깝게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9경기에서 55⅔이닝을 던지며 5승2패를 거두면서 확실한 에이스로 활약 중이다.
↑ 임기영은 신데렐라다. 애초 선발 후보로 꼽히지 않던 선수이지만, 이제 선두 KIA의 확실한 선발카드 중 하나다. 사진=MK스포츠 DB |
임찬규의 활약도 반갑다. 2011년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LG에 입단해, 그 해 유력한 신인왕 후보 중 하나였던 임찬규는 이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이후 수술을 받고 경찰청에서 병역을 해결한 뒤, 돌아와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현희는 두 차례 홀드왕을 차지한 거물이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돌아와 올 시즌 선발로도 순항 중이다. 이 밖에 조상우(23) 최원태(20·이상 넥센) 김원중(23·롯데) 등 25세 미만 우완 선발 투수들이 눈에 띈다.
↑ 한현희의 컴백은 반갑다. 홀드왕을 두차례나 차지한 한현희는 지난 2015년 선발로 전환했다가 다시 불펜으로 돌아간 아픈 기억이 있다. 이후 수술을 받고 1년간 재활을 마친 뒤 건강한 선발로 돌아왔다. 사진=MK스포츠 DB |
그렇다면 괜찮은 우완 영건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는 KBO리그 각 구단별로 육성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고, 선수 관리에 대한 시스템이 정착됐다는 의미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 야구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문제가 바로 유망주 혹사 문제다. 고교시절 많은 공을 던진 투수가 프로에 와서도 체계적인 관리를 받지 못하며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각 구단별로 육성과 관리라는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유망주들이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얘기다.
또 올 시즌부터 스트라이크존이 확대된 것도 젊은 투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한 관계자는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진 게 투수들에게도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트라이크로) 안잡아주던 공을 잡아주다 보니, 더욱 자신있게 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아무래도 경험이 적은 젊은 투수들이 볼이 많아지다 보면 어렵게 승부를 하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졌다고 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제구력이 갖춰져야 효과가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 임찬규는 곧 장내 평균자책점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규정이닝에 4.1이닝 모자른 상황이라, 다음 등판에서 퀄리티스타트 행진을 이어간다면 무리없는 시나리오다. 사진=MK스포츠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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