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사이먼, 사이먼 도미닉. 사이먼 디오엠아이엔아이씨 오오.”
SK와이번스 한동민(28)의 등장곡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마치 홈런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다. 물론 한동민의 방망이도 주문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13일 경기(문학 한화전)까지 한동민은 59경기에서 21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홈런 부문 단독 선두를 지키고 있다.
특히 13일 한화전 3회말에서 한동민의 등장곡 사이먼 도미닉과 함께 SK는 올 시즌 두 번째 백투백투백 홈런(세 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한 시즌 최다 백투백투백 홈런 타이기록이기도 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나온 홈런이지만, 한동민의 괴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포이기도 했다. 한동민에 앞서 정진기와 최정은 이날 한화 선발 이태양을 상대로 백투백 홈런을 때렸다. 그리고 마지막 차례는 한동민이었다. 타석에 들어선 한동민은 이태양과 볼카운트 2-2에서 6구째 들어온 138km 높은 속구에 벼락같은 스윙을 날렸고, 힘이 실린 타구는 인천 행복드림구장 우측 담장을 넘어갔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알 수 있는 큰 타구였다. 비거리는 120m. SK는 지난 4일 대전 한화전에서 올 시즌 첫 백투백투백 홈런(최정-제이미 로맥-을 기록한 바 있다.
거포군단 SK에 한동민은 새로운 홈런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팀 선배 최정(30)과 뜨거운 홈런 부문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일 인천에서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올 시즌 팀 100번째 홈런이자, 자신의 18번째 홈런을 때리며 단독선두를 달리던 최정과 공동선두에 등극했던 한동민은 지난 10~11일 잠실 LG전에서 두 경기 연속 홈런을 치고 시즌 19호, 20호 홈런을 차례로 기록하며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백투백투백 홈런이 나온 이날 한화전에서는 바로 앞 타자인 최정이 시즌 19번째 홈런을 치며 추격하자, 바로 자신의 21번째 홈런을 때리며 달아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 13일 인천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백투백투백 홈런을 완성시키는 SK와이번스 한동민. 거포군단 SK의 새로운 홈런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사진=김영구 기자 |
◆ 거포? 고교 시절까지 아기자기한 야구했다
사실 ‘거포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는 한동민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고교시절(경남고)까지 그는 거포와 거리가 먼 타자였다. 한동민은 “연습경기에서는 몇 번 쳐보긴 했는데, 공식 경기에서 홈런은 고교 단 한 차례도 기록하지 못했다. 나는 아기자기한 야구를 하는 선수였다. 한마디로 똑딱이였다”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야구를 시작한 이유도 평범했다. 그는 “공부하기 싫어서는 아니었고(여기서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졌다), 그냥 동네에서 치고 노는 걸 좋아해서 부모님께서 ‘리틀야구 해볼래’라고 권유하신 게 일이 커져버렸다. 나도 내가 프로야구 선수가 될 줄은 몰랐다”며 “중학교 때까지는 주로 유격수를 맡았다. 하지만 고교에 진학하면서 키도 크고, 나보다 수비를 잘 하는 선수들이 많더라(한동민의 고교 동기로는 롯데 신본기가 있다). 그래서 1루수도 보고, 3루수도 봤다”고 설명했다.
한동민은 대학(경성대) 진학 후 공식 경기 첫 홈런을 기록했다. 1학년 때인 2008년 5월10일 동의대와의 경기였다. 이후 대학 4년 동안 통산 8개의 홈런을 때렸다. 한동민은 “대학에 가면서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몸도 많이 불면서 힘이 붙었다. 물론 대학 때 연습량이 많아서 체중이 줄긴 했지만, 3학년 때 외야도 시작하면서 타격 쪽 장점을 살리기 시작했다. 홈런에 눈을 뜬 건 아니지만, 그때도 치다보니까 홈런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3학년 때까지 한동민은 대학리그를 대표하는 장타자였고, 그해(2010년) 우수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홈런을 치고 3루를 도는 한동민. 6월13일까지 21차례 아치를 그리고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왔다. 사진=김영구 기자 |
하지만 4학년 때 심한 부침을 겪었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상위 라운드로 프로지명이 유력했지만, 어중간한 수비에 공갈포 이미지가 강해져버린 한동민은 프로구단으로부터 외면당했다. 한동민은 “야구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다. 남들 쉴 때도 운동을 했는데, 프로에 지명되지 못하고, 신고선수로 입단해서는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 때 심각하게 다른 일을 할까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물론 프로구단으로부터 외면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한동민은 9라운드 전체 85순위로 SK에 부름을 받았다. 그는 “다행히 끝자락에서 저를 불러주셨지만, 기쁘면서도 자존심이 꽤 상했다. 그러나 막상 프로에 오고나니 ‘내가 9라운드 정도 밖에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잘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프로에 입단한 뒤 한동민은 차세대 거포로 기대를 모았다. 입단 첫 해인 2012년 부상을 당해 1군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2013년 99경기 14홈런(타율 0.263, 타점 52)을 쏘아 올리며 '깜짝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4년 3홈런에 그치며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는 한동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곳이다. 상무시절 한동민은 퓨처스리그(2군)에서 2015년(21개), 2016년(22개) 2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한동민은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늘 급했는데 상무에선 부담감을 약간 내려놓을 수 있었다”며 “럭비부나 역도부 등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타부 선수들을 찾아다니며, 벌크업의 비법도 물으며 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 룸메이트인 팀 선배 최정과 홈런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는 한동민. 물론 한동민은 "의식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사진=김재현 기자 |
지난해 9월 상무에서 전역한 한동민은 곧바로 SK 1군에 등록됐고, 붙박이 1군 멤버로 자리잡았다. 올 시즌 목표는 소박했다. 한동민은 “어떻게든 1군에서 살아남자는 생각 뿐이었다”며 “어떻게 하다 보니 기회가 왔을 때 하나하나씩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는 인천에서 ‘동미니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무시무시한 홈런을 날리면서 야구 강국인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외국인 타자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다. 한동민은 “처음에는 뭐야?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마음에 든다. 선배들이 붙여준 별명이라 더 애착이 간다”며 껄껄 웃었다.
공교롭게도 홈런레이스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팀 선배 최정과는 원정 룸메이트다.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할 찰나 한동민은 “나는 홈런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최)정이 형같은 클래스도 아니고, 꾸준히 홈런을 많이 쳤던 것도 아니다. 어차피 홈런왕은 정이 형이 될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처음으로 1군에서 풀타임 시즌을 보내느라, 지금은 부상 없이 한 시즌 잘 치르자는 생각뿐이다”라며 잘라 말했다. 물론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체중도 5~6kg 줄어들고, 5월 초중반에는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 한동민은 “매일 마음을 비우고 있다. 어차피 나는 몰아치는 타자이기 때문에, 안 터질 때도 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고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도 한동민의 홈런은 인천 야구의 새로운 볼거리다. 홈런에 관한 질문에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던 한동민은 “승리에 기여하는 홈런을 많이 치고 싶다. 내가 홈런 친 날 팀이 지면 좀 마음이 좋지 않다. 내 실속도 차리는게 좋지만, 일단 팀이 잘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동민
1989년 8월9일생
190cm 95kg
중앙초(해운대리틀)-대천중-경남고-경성대
2010년 야구인의 밤 우수선수상
2011년 야구월드컵 국가대표
2012년 SK 9라운드 85순위 입단
2015년 퓨처스리그 홈런왕
2016년 퓨처스리그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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