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둑계의 일선현장에 프로와 아마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 프로기사와 아마기사가 한 팀을 이뤄 총 10개 팀으로 창설된 제1회 SG신성건설배 프로암바둑리그(이하 ‘프로암리그’)가 지난 9월 9일 개막했고, 8월 26일~27일 이틀간 경남 밀양에서 개최된 순수 아마대회 제10회 노사초배전국바둑대회는 올해 처음으로 30명의 프로기사에게 문호를 개방해 아마고수와 맞대결을 펼쳤다. 이와 같은 새로운 현상을 바라보는 바둑인의 시선은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과연 프로암 융합의 바람이 한국바둑의 내실을 다지고 외연을 살찌울 순풍이 될지,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역풍이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예상하기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전망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프로와 아마바둑의 행정을 관장하는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대바협’)의 협력체제가 여전히 미비하기 때문이다.
프로암이라는 용어는 원래 프로골프대회에서 스폰서회사가 아마추어 선수를 초청한 이벤트행사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우리 ‘체육학사전’은 프로암을 골프의 전문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바둑은 처음부터 프로기사가 모든 행정의 중심체가 되어서 발전해 왔고, 특히 예전에는 일단 프로기사가 되면 창창한 앞길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었으니까 프로가 아마에게 문을 여는 것은 다른 나라의 일이었다. 물론 전에도 국내스폰서회사가 주최하는 세계대회에 아마기사를 제한적으로 참여시킨 적은 있지만 지금과 같은 전면적인 맞대결 형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대상황이 크게 변했다. 프로기사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기전이 계속 축소되어서 프로기사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발등의 불이 되었고, 아마대회를 주최하는 측의 입장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프로기사가 대회의 홍보효과를 자동으로 높여주니 개방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국바둑은 근본적인 운영체제의 정립 여부와는 상관없이 시장현실에 따라서 프로와 아마를 가로막고 있던 빗장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과연 이러한 프로암의 융합현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리 바둑계에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자.
1. 한국기원과 대바협의 협력체제 구축
이 주제는 우리 바둑계의 현안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살피다 보면 항상 만나는 단골손님(?)이다. 프로암 융합현상 역시 한국기원과 대바협의 공동협력체제가 지금처럼 막혀 있으면 자칫 바둑계의 운영질서를 흩트리는 악재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올해 상반기에 양 단체 협력기구의 중재역을 맡아서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서로의 입장차와 불신의 벽이 훨씬 크고 높아서 결국 중도에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하루하루 소중한 시간은 흘러갔고, 최근에 불고 있는 프로암 융합의 바람은 상호 협력체제의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두 단체가 한국바둑의 중흥이라는 큰 목표 아래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 서로 가슴을 열고 대화의 장에 나서서 각자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공동협력을 통해서 한국바둑을 국민스포츠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 번 따져보자.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 두 단체 모두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지만 굳이 평가하면 한국기원의 의식전환과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기원은 창설 이래 바둑행정을 대표하는 총본산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바둑을 스포츠로 전환하기로 결정해서 정부 산하의 체육단체인 대바협을 창설했을 당시에 구체적인 전략적인 로드맵을 수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기원의 기능이 둘로 나누어지면서 서로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의해서 시기별 실행플랜을 완성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불통문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늦었다고 판단했을 때가 변화를 시도할 시점이다. 한국기원은 대한체육회의 정가맹단체인 대바협의 효율적인 운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하루 빨리 기존의 일부 사업을 대바협에 단계적으로 이관하고 공동협력체제를 가동해야한다. 그래야 한국바둑이 산다.
그런데 대바협이 탄생한지 무려 12년이 더 지난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두 단체 간의 소통은 어렵고, 협력관계는커녕 경쟁상태가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기원이 여전히 대바협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스포츠계의 경쟁시장에서 한국바둑은 외부요인이 아닌 내부문제에 발이 묶여 있는 셈이다.
부디 두 단체가 빠른 시일 내에 협력해서 각종 현안과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기를 촉구한다. 무엇보다도 혼란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둑꿈나무와 학부모, 일선지도자와 바둑종사자의 아픔을 하루 빨리 치유해야 한다. 교착상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시장질서는 더욱 더 악화될 것이고, 한국바둑을 국민스포츠로 육성할 업무추진의 동력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대바협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대바협은 전국 17개 시도협회와 산하단체는 물론이고 각 급 학교와 클럽 등과 협력해서 바둑 인프라를 튼실하게 구축하고, 스포츠로서 바둑종목의 경쟁력을 제고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있는 체육단체이다. 따라서 자체적인 행정력을 향상시켜서 한국기원과의 협력체제 가동에 대비하고, 필요한 과제에 대해서는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국회 등과도 지속적으로 업무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물론 제반 여건상 어려움이 많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결과에 따르는 부담은 오롯이 대바협 몫이 될 것이므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대바협이 조금만 보폭을 넓히려 해도 이곳저곳에서 오랜 세월 한국기원이 주도해 온 바둑행정의 관행이라는 덫에 걸려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한국바둑이 처한 운명이고 대바협이 감내하고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2. 프로암리그의 운영과 아마대회의 프로참여 문제
다음으로 프로암리그의 운영과 아마대회에 프로기사가 참여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7월 충남 아산시의 온양온천호텔에서 거행된 2017자몽신드롬배 내셔널바둑리그 아산라운드 기간 중에 프로암리그의 창설을 주도한 양건 기사회장으로부터 추진상황을 전해 듣고, 몇 가지 의견을 전달했다.
첫째, 프로암리그의 창설은 발전적인 시도로 판단되지만 기존 내셔널바둑리그의 운영에는 절대 차질이 없어야 한다.
둘째, 프로기사와 아마기사가 같은 비율로 한 팀을 이루어서 리그를 구성하므로 아마바둑행정을 관장하는 대바협의 이해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프로암리그의 주최 측에서 정식공문으로 대바협에 경과를 설명하고 협력사항에 대해서 협의를 진행하기 바란다.
필자는 양건 회장과의 만남 직후에 프로암리그에 관한 정보사항을 대바협 사무국에 전달하면서 상호간의 효율적인 업무연계가 진행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업무협력은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마디로 아마바둑행정을 관장하는 대바협의 자산권을 한국기원이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기원 측의 보다 전향적인 현실인식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업무협력을 기대한다.
그리고 프로암리그의 운영규정에 대해서 몇 가지 사항을 건의하고 싶다. 먼저 프로암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아마선수에게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입단 포인트를 부여하는 직접적인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선수수당 규정도 프로와 아마선수가 현재와 같이 두 배의 차이가 있는 것은 동일조건으로 맞대결을 펼친다는 프로암리그의 근본취지에도 맞지 않으므로 개정되어야 한다. 물론 프로기사의 자존심 유지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이해되지만 아마가 프로에게 승리할 경우에는 별도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법과 같은 대안을 적용하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아마대회에 프로기사가 참가하는 문제에 관한 내용이다. 프로암리그가 프로에서 아마를 초청하는 형식인 것과는 달리 순수한 아마대회에 프로기사가 출전하는 것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프로와 아마가 동일조건으로 예선전부터 맞대결을 펼치게 되면 아마기사의 대국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대바협에서는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아마바둑대회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프로기사의 참가여부를 심사하는 규정을 제정해야 한다. 또한 일단 프로기사가 참가할 경우에는 기존의 대전방식을 확대, 변경해서 프로기사부를 추가하고 프로와 아마(최강부)가 각기 별도의 라운드를 진행한 다음, 프로와 아마부의 우승자가 왕중왕 대결을 펼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모쪼록 지금 우리 바둑계에 불고 있는 프로암의 바람이 긍정적인 순풍이 되어서 한국기원과 대바협의 행정적인 협력체제 구축은 물론이고, 한국바둑의 시장규모를 대폭 확대시키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