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대한민국 축구 A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으나 그 과정이 험난했다.
성난 여론은 들끓었으며 비판의 강도가 매우 셌다. 썩은 살도 도려냈다. 변화의 높은 물결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그 가운데 상처는 깊었다. 아직 다 치유되지도 않았다.
2017년 A매치 성적표는 4승 6무 4패. 그러나 10월까지 단 1승에 그쳤다. 1월 37위였던 세계랭킹은 12월 60위까지 떨어졌다. 이마저도 10월 62위보다 2계단 올랐다.
다사다난했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말’ 한 마디의 중요성은 매우 컸다.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나, 말 때문에 더 큰 파장이 일어났으며 논란이 증폭됐다. 말을 통해 2017년 A대표팀을 돌아봤다.
↑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전 마지막 인터뷰. 그는 마지막까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만 위기에 처한 한국축구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사진=김재현 기자 |
(3월 28일 시리아와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 승리 이후 슈틸리케 감독의 기자회견)
한국은 5일 전 중국 원정 첫 패배의 충격을 딛고 시리아를 1-0으로 이기며 기사회생했다. A조 2위 자리도 지켰다. 그러나 결과일 뿐이다. 내용은 개선된 게 없었다. 종료 직전 상대 슈팅은 크로스바를 때렸다. 졸전이 거듭되니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만 긍정의 노래를 불렀다. 강한 동기부여가 월드컵 본선 진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망상이었다. 헛소리였다. 이대로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대한축구협회 내부적으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 재신임 여부 안건이 곧바로 기술위원회에 회부됐다.
“최근만 갖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4월 3일 기술위원회가 격론 끝 슈틸리캐 감독의 유임을 결정한 배경을 설명한 이용수 기술위원장)
공개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재신임 여부를 놓고 처음으로 논의했다. 그만큼 긴박했다. 이 위원장조차 ‘비상사태’라고 표현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칼을 뽑지 않았다. 2014년 9월 지휘봉을 잡은 이후 전체를 평가해야 한다고 했으나 추락하는 시점이었다. ‘수틀리케’로 오명을 받는 그는 소방수로서 능력이 없었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 위원장의 바람과 다르게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이 위원장은 2달 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결국 감독 교체와 함께 동반 사퇴 카드를 꺼냈다. 너무 늦은 조치였다. 한국은 이후 잔여 3경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며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받지 말아야 할 부담까지 받아 경기력에 영향을 끼쳤다.”
(6월 14일 카타르와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 패배 뒤 기성용의 귀국 인터뷰)
조기 소집 효과는 없었다. 한국은 카타르에게 2-3으로 패하며 벼랑 끝에 몰렸다. 결과는 물론 내용도 나빴다. 슈틸리케 감독의 마지막 경기로 귀국 다음날 경질됐다. 비판의 화살은 감독뿐 아니라 선수에게도 향했다. 주장 기성용은 선수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통감했다. 그러면서 여론과 언론의 비판에 불평을 터뜨렸다. 팀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로 인해 팀 분위기가 나빠지고 심리적인 압박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비판이 지나쳤다는 기성용의 발언은 뜨거운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 김영권은 9월 1일 우즈베키스탄 출국 전 실언 논란에 대한 공개 사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천정환 기자 |
(8월 31일 이란과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을 마친 뒤 김영권의 발언)
이기면 자력으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할 수 있었던 신태용 감독의 데뷔 무대.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고도 승리하지 못했다. 6만3124명의 구름 관중의 아쉬움은 컸다. 그 가운데 주장 완장을 찬 김영권의 믹스트존 인터뷰는 실언 논란까지 번졌다. 그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졌으며, 그 후폭풍은 거셌다. 축구팬은 “시끄러울 수 있으니 다시는 축구장을 가지 않겠다”며 분노했다. 결국 김영권은 이튿날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하면서 공개 사과 인터뷰까지 해야 했다. 눈시울을 붉힌 김영권은 “내 뜻이 잘못 전달됐다. 죄송하다. 모두 다 내 잘못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결과도 모르고 헹가래를 펼쳤겠는가. 사실이 아니다."
(9월 6일 우즈베키스탄과 러사아월드컵 최종예선 10차전 직후 불거진 헹가래 논란에 대한 신태용 감독의 해명)
한국은 우즈베키스탄과 0-0으로 비기면서 끝까지 월드컵 최종예선 무승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시리아가 이란을 이기지 않아야 A조 2위로 본선 직행이 가능했다. 시리아는 이란에 1-2로 뒤지다 후반 48분 동점골을 넣으며 한국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시리아의 극장골은 터지지 않아 한국은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란-시리아전이 끝나기도 전에 월드컵 본선 진출 세리머니와 헹가래를 했다는 보도에 무수한 비난을 받았다. 신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세리머니를 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축구팬이 뿔난 이유는 달랐다. ‘본선 진출 당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마지막까지 경기력 부진에 시달리고도 자축하는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았다, 더욱이 이란-시리아전이 진행 중인 가운데 서둘러 가진 중계방송사와의 필드 인터뷰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축구팬의 심기를 건드렸다.
↑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히딩크 해프닝 속 거짓 발언을 해 곤욕을 치렀다. 대한축구협회 쇄신의 부채질을 했으며, 결국 그는 물러났다. 사진=MK스포츠 DB |
(9월 7일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희망 의사를 전달 받았냐는 질문에 대한 김호곤 기술위원장의 답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뻐할 틈도 없었다. 곧바로 히딩크 이슈가 터졌다. 거스히딩크재단 노제호 사무총장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히딩크 감독이 지난 6월 다수의 국민이 원할 경우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의사가 있다고 알렸다. 대표팀 경기력 부진과 맞물려 ‘히딩크 광풍’이 불었다. 그 가운데 김 위원장은 히딩크 측과 접촉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 만날 일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명백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논란은 증폭됐다.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던 축구협회는 뒤늦게 수습했다. 러시아에서 어떤 형태로든 돕겠다는 히딩크 감독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내부 변화도 불가피했다. 조직 개편 및 인적 쇄신을 했다. 파격 강도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11월 2일 물러났다.
"국가를 대표해 뛰는 것은 최고의 선물이다. 은퇴하는 날까지 그 발언을 지키고 싶다."
(11월 2일 전북 현대의 K리그 우승 기념 미디어데이서 대표팀 은퇴에 대한 이동국의 소신 발언)
10월 30일 신태용호 3기 명단 발표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이름이 없던 이동국이었다. 신 감독은 “K리그의 영웅을 아름답게 보내줘야 한다”라며 러시아월드컵 로드맵에서 제외했다. 불과 2개월 전 호평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대표팀 강제 은퇴’라는 말이 돌았다. 이동국은 3일 뒤 입장을 표명했다. 최선을 다하고도 비난 받는 것에 아쉬움은 있지만 대표팀 제욍 대해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도 38세 공격수가 화제의 중심에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과거 “축구선수는 축구화를 벗는 순간까지 대표팀 욕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밝혔던 이동국은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 손흥민 때문에 웃을 수 있던 11월이었다. 반등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사진=김영구 기자 |
(11월 10일 콜롬비아와 평가전에서 2골을 넣어 승리로 이끈 손흥민의 소감)
한국은 콜롬비아를 2-1로 이겼다. 3월 28일 시리아와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8개월 만에 전한 승전보였다. “이제부터가 진짜다”라며 반전을 꾀하던 신 감독은 희망을 선사했다. 그의 출사표대로 경쟁력과 조직력, 투혼 모두 합격점이었다. 열심히 뛰는 모습에 축구팬은 환호했다. 이를 악 물고 뛰었던 태극전사다. 바람 잘 날이 없던 터라, “사실 부담과 걱정이 많았다”고 고백한 손흥민이었다. 그는 콜롬비아 같은 강팀을 이겨 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