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주요 기업 대주주들이 증시 폭락 전에 보유주식을 대거 처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내부 정보를 이용해 회사 주가를 올리고, 주가 폭락 직전 대거 자사주를 처분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렸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최근 증시 급락으로 투자자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기업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투매현상에 불을 붙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중국 경제매체 왕이커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현재(6월 23일 기준)까지 중국 상장기업의 대주주(지분 5% 이상 보유) 1200여명이 4771억 위안(약 85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매도규모 2505억위안보다 2배나 많다.
이들 대주주는 지난 4월 상하이종합지수가 4000선을 넘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주식을 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근 상해증시의 폭락직전 수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팔아 시세차익을 남긴 ‘러스왕’의 자웨팅 최고경영자(CEO)에 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러스왕은 미국 ‘넷플릭스’같이 온라인동영상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중국 대표 기업이다.
자웨팅은 이달 1~3일 사흘간 총 25억위안(약 4500억원)의 자사주를 팔아치웠다. 6월 3일 기준으로 주당 78.98위안이었던 이 회사 주가는 23일 54.30위안으로 폭락했다. 자웨팅의 매도 직후 20일만에 30%나 빠진 것이다. 주가하락으로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자웨팅은 2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회사의 현금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미리 현금마련을 위해 자사주를 판 뒤 일부를 회사에 대출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자웨팅 CEO가 기업의 대주주로서 책임있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차익실현을 노리고 주식을 투매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왕이커지 등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이처럼 중국 기업 CEO들의 자사주 투매가 이어지면서 중국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하너지그룹이 이같은 불안의 시발점이 됐다. 하너지박막발전그룹 주가는 지난달 20일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개장후 30여분만에 반토막 났다.
하너지그룹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국정부의 정책적 뒷받침 속에서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갔다. 하지만 대부분 유통 물량이 계열사 간 내부자 거래를 통해 이뤄졌고, 제대로 된 에너지 핵심기술도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여파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이런 사태에도 당시 리허쥔 회장은 주가하락을 미리 예상하고 공매도 물량을 늘려 빈축을 산 바 있다.
공매도란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파는 것을 의미한다. 예상대로 주가가 내려가면 내려간 가격에 주식을 사서 빌린 주식을 갚아 차익실현을 할 수 있다. 대주주이자 CEO가 주가를 방어하기 보다는 되레 주가하락을 부추긴 ‘도덕적 해이’가 벌어진 것이다. 현재 하너지그룹은 홍콩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주식은 거래정지 상태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5000선을 넘긴 지난 12일 이후 일주일만에 13% 넘게 빠지면서 1600조원이 증발했다. 돈을 잃고 비관한 30여명의 개미투자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 중국 본토에 파다하게 퍼지며 불안감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대주주들의 차익실현이 논란이 되고 개미들의 투자피해가 커지자 중국 증권 시장에서는 주요 주주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류수웨이 중앙재경대학 교수는 “지난해 러스왕의 영업이익은 4768만위안을 기록했는데, 이 회사 창업자인 자웨팅은 사흘만에 25억위안의 현금을 챙겼다”며 “상장사의 경영 상황이 좋다면 대주주나 CEO가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대기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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