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상태인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 여부가 12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결정된다.
긴축반대 국민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가 “새 긴축안을 내겠다”며 입장을 바꾸고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국제사회에서 “양보하라”는 압력이 커짐에 따라 다시 머리를 맞대기로 한 것이다. 파국으로 치닫던 그리스 사태해결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최종 사태해결 여부는 긴축과 채무탕감 사이서 줄다리기를 벌이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메르켈 총리간 한판 승부가 될 전망이다.
메르켈 총리는 7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그리스의 개혁 리스트가 충분하고 긴축조치를 선제적으로 시행할 경우 그리스가 당장 필요한 단기 자금이 제공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 입에서 그리스의 개혁의지에 대해 긍정적 평가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독일의회에 그리스에 대한 장기지원협상을 요청할 수 있도록 9일까지 그리스 정부로부터 충분한 개혁안을 제안 받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날 메르켈 총리는 아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게 그리스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따라 ECB가 현금고갈로 영업이 중단된 그리스은행들을 위해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증액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ELA는 ECB가 그리스은행들에게 제공하는 단기차입이다.
그리스의 파국의 시계바늘은 일단 5일간 멈추는 셈이다. 대신 이때까지 EU에 제출될 그리스의 새로운 개혁안을 다시 12일 EU정상들이 평가후 구제금융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는 시나리오다.
“추가협상은 없다”고 잘라 말하던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EU정상들의 강경한 입장이 누그러진 것은 이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전방위적 설득공세를 벌이고 동시에 치프라스 총리 역시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초 ‘30% 채무탕감’을 거세게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던 치프라스 총리는 채무탕감 요구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지난달 30일 채권단이 제시했던 부가가치세 개편, 연금·국방비 삭감 등의 내용을 모두 포함한 긴축안을 설명했고 국방비 경우 채권단 요구보다 더 큰 규모로 삭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도 ‘선 긴축안 합의-후 채무탕감 논의’라는 원칙을 분명히 했는데 이런 채권단의 눈높이를 치프라스 총리가 처음으로 맞춘 셈이다.
이날 유로존 정상들은 그리스에 9일까지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로부터 2년간 지원을 받기 위한 개혁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ESM의 구제금융은 유로존의 안정을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된 기금이다. 지난달 30일 치프라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대신 ESM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지만 “명분이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 메르켈 총리가 유화적 입장을 취하면서 규정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정부입장에선 깐깐한 IMF보다 EU가 직접 콘트롤 하는 ESM이 대출절차나 협상에 훨씬 유리하다. 자금 규모는 500억∼700억 유로 수준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런 ESM의 구제금융을 받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U의회 승인 등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오는 20일 ECB에 35억 유로에 달하는 채무를 상황하지 못하면 진짜 ‘디폴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채권단은 오는 12일 EU정상회의에서 새 구제금융이 합의할 경우 그리스가 ECB채무를 갚을 수 있도록 임시대출 성격의 ‘브릿지론’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런 유로존 태도변화를 이끌어 낸데는 그리스의 새 재무장관도 한 몫했다.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신임 재무장관은 이날 회의를 마친 후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언론에 “승리주의는 없다(No triumphalism)”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로이터 통신은 “싸움만 벌이던 전임 장관보다 훨씬 절충적이고 건설적이며 겸손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장밋빛 기대’는 이르다. 이날 치프라스 총리는 ECB가 현재 시행하는 매월 600억유로 규모의 국채매입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리스 국채를 3~4년간 매입해 줄 것을 요구했다. ‘빚’으로 ‘빚’만 갚는게 아니라 추가적인 경제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유로존 회원국들은 자칫
치프라스 총리 역시 넘어야할 벽이 있다. 이미 그리스 국민들이 추가적인 긴축정책에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한 만큼 새 긴축안에 대한 국민 설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지용 기자 / 이덕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