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시간) 예상밖 압도적 총선 승리로 캐나다 차기 총리로 내정된 43세 젊은 정치인 쥐스탱 트뤼도.
그에겐 ‘부자(父子)총리’, ‘캐나다의 케네디 가문’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붙는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17년간 총리를 지낸 피에르 트뤼도의 장남이면서 전직 장관 출신 제임스 싱클레어의 외손자로 후광을 등에 업었다는 분석도 많다.
하지만 실제 그의 정치인생은 그랬을까.
뉴욕타임즈(NYT)는 20일 “저스틴 트뤼도는 2년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뤼도’라는 성을 가진 것은 평생의 축복이자 저주라고 말할 정도로 가문의 후광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다”고 보도했다. 어딜가나 무얼하나 따라 붙는 ‘트뤼도’라는 아버지의 이름 때문에 그의 청년시절과 정치이력은 ‘트뤼도’가 아닌 ‘저스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이런 저스틴의 모습을 찾기 위해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뤼도 가문의 무덤’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정치에서 은퇴하자 고등학교를 퀘벡주 몬트리올에 위치한 프랑스 랭귀지 스쿨로 옮겼다.
퀘벡주와 몬트리올은 지난 80년대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와 악연이후 30여년간 자유당 무덤으로 여겨진 곳이다.
프랑스권 문화가 강한 퀘벡주는 옛부터 캐나다로 부터 분리를 주장해왔고 저스틴의 부친이 총리로 재직시절 분리투표가 일어났다. 피에르 전 총리는 급한 마음에 “자치권을 신장시켜주겠다”는 약속으로 분리투표를 막았지만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피에르 트뤼도란 이름은 퀘벡주민들에게 ‘배반의 정치’의 대명사로 남게 된 것이다.
처음엔 학교 선생·학생까지 그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소탈한 그의 성격은 주변 사람들을 그의 편으로 바꿔놨다.
이번 선거에서 결정적 조언자 역할을 했던 그의 정치고문들도 상당수가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이런 정치적 동지를 확보한 그는 지난 2008년 바로 몬트리올에서 생애 첫 선거라는 ‘정치승부수’를 띄웠다. 그때 역시 이번총선처럼 초반 여론은 바닥권이었지만 막판 역전극을 이끌어냈다. 자유당의 무덤에 깃발을 세워올린 승부수를 통해 그는 “아버지의 후광에 기댄다”는 비판을 단박에 깨트렸다.
이번 선거에서도 자유당은 퀘벡 주 78개 선거구 중 40곳에서 승리를 거두며 총리직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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