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블루’ 에 냉담한 英의회…“문제는 인권이야”

중국 지도자의 영국 국회의사당 데뷔 무대에 ‘스탠딩 오베이션(기립박수)’는 없었다.
20일(현지시간) 오후 영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영국 의사당 웨스트민스터 내의 로열 갤러리에 마련된 연단에 섰다. 로열 갤러리는 의사당에서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홀로 ,국가행사나 주요 의식, 대형 리셉션 등이 있을 때만 사용한다.
여기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연설(중국어)하면서 “양국관계를 새로운 고도로 끌어올리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국 외교 관계자들은 시 주석의 의회연설로 양국 경제·외교의 ‘황금시대’를 예고했다고 의미를 더했다.
역사적인 연설은 11분 동안 진행됐다.
하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썰렁했다. 중간에 박수를 치는 의원은 없었고 연설이 끝난 후 기립박수도 없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통역기도 없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를 제외한 대다수 영국 정치인들 반응은 냉랭했다. 인권문제와 철강덤핑 등 예민한 사안들이 수시로 연설장 안팎에서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영국 국빈방문 첫날인 이날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양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양쪽 반대편에 있지만, 오랜 공동의 깊은 상호 애정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영국 방문을 앞두고 인권 논란이 일었던 것을 의식한 듯 중국의 ‘법치’를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중국 국민은 모든 면에서 법질서를 높이고 있다”며 “우리 목표는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연설에 앞서 존 버커우 의회 하원의장의 ‘인권 강의’도 들어야 했다고 가디언과 텔레그래프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버커우 의장은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행동은 중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십억 명이 지켜보고 있다”며 “우리는 단순히 세계에서 강한 국가만이 아니라 세계적 도덕적 영감을 주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인권탄압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는 “이곳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연설한 곳”이라며 수치 여사를 ‘노벨평화상 수상자’, ‘민주주의의 대변인’, ‘인권의 상징’이라고 칭송했다. 그는 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언급하며 “그는 위대한 민주주의의 대리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표정 변화 없이 들었으며 이후 버커우 의장이 청한 악수에도 응했다.
시 주석은 연설 이후 가진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와의 면담 때는 인권문제와 더불어 “중국산 철강 덤핑 때문에 영국 철강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대규모 감원에 나서고 있다”는 항의를 들어야했다.
영국에 제철소를 둔 카파로 인더스트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파산 신청을 냈고 인도의 철강업체 타타스틸이 영국 사업부에서 1200명을 감원할 예정이라고 같은날 발표했다. 중국산 철강 덤핑으로 인해 철강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하며 약 30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서울 = 이유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