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언사와 막말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쟁에서 앞서가던 도널드 트럼프가 5일(현지시간) 위스콘신 경선에서 무너졌다.
대선후보 선정 대의원을 모두 독차지하는 승자독식제로 치뤄진 위스콘신 프라이머리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가 48.4%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트럼프는 35.0%, 존 케이식은 14.0% 득표에 그쳤다.
1854년 위스콘신주 리폰에서 30여명의 리더들이 새 정당 결성을 촉구한뒤 설립된 것이 공화당이다. 이처럼 공화당 발상지로 통하는 위스콘신 주민들은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고 공화당 전통과 가치관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공화당 권력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위스콘신이 지역구다. 이처럼 공화당원들에게 상징성이 큰 위스콘신에서 트럼프 기세가 꺽인것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한다.
거듭된 막말과 비이성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트럼프 실체가 드러나면서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신호라는 진단이다. 경선을 불과 몇일 앞두고 트럼프는 낙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가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낙태 시술을 한 의사가 잘못”이라고 말을 바꿨지만 이미 ‘진지하지 못한 후보’라는 낙인이 찍힌 뒤였다. 이후 트럼프를 지지했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한·일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발언도 역풍을 초래했다.
트럼프가 외교·안보 분야에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트럼프에게 대권을 맡기기에 불안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위스콘신 제조업 노동자들을 의식해 보호무역 공약을 강조한 것도 패인으로 지목됐다.
트럼프 진영은 “자유무역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는 주장이 먹혀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공화당 이념에 충실한 위스콘신 유권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스콘신 경선 패배가 트럼프 상승세가 꺾이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선거공학적으로 볼때 탄탄했던 지지율이 한번 꺾이면 하락세에 가속도가 붙는다. 지금까지 지켜 온 트럼프 지지율이 ‘허상’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 지지가 급속도로 와해되기 쉽다. 남은 경선에서 트럼프가 고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공화당 발상지로 여겨지는 위스콘신에서의 트럼프 패배는 단순한 패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선 트럼프가 자력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기 위한 대의원 과반 확보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해졌다. 이날까지 확보한 대의원은 트럼프가 743명, 크루즈가 510명으로 여전히 격차가 있다. 하지만 남은 대형 경선지역인 뉴욕, 펜실베니아,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지지율에 따라 트럼프와 크루즈가 대의원을 나눠가진다고 가정하면 트럼프가 과반 대의원을 의미하는 ‘매직 넘버’ 1237명을 확보하는게 불가능하다.
과반 대의원을 확보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중재 전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 선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경우 트럼프가가 공화당 지도부 입김이 많이 들어가는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택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공화당 수뇌부가 공화당 정체성과 배치되는 행보를 보이는 트럼프를 결사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재 전당대회에서 첫투표는 대선후보들이 경선 과정에서 확보한 대의원들이 해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하지만 과반수를 확보한 대선후보가 나타나지 않으면 두번째 투표부터는 대의원들이 원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는 자유투표에 들어간다. 경선 레이스를 포기한 마르코 루비오, 젭 부시 등이 확보한 대의원들은 전당대회 첫 투표에서는 사표로 처리되지만 2차, 3차 투표에서는 경선에서 낙오한 루비오와 부시 대신 다른 대선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다.
대의원들이 대부분 공화당 지도부와 가까운 사람들이기때문에 자유투표권을 얻은 대의원들이 트럼프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결국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대의원을 확보한채 경선을 마감하더라도 대의원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중재전당대회가 열리면 크루즈가 대선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당대회 과정에서 기존 규정을 바꿔 라이언 하원의장 등 제3의 대선후보가 추가될 수도 있다.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는 물
중재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이 “7월 전당대회가 끝날 때까지 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한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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