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일요일 연쇄 지진으로 타격을 받은 구마모토현 중심도시 구마모토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탓에 거리는 한산했다. 구마모토공항은 폐쇄됐고,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오가는 신칸센과 전철, 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이 모두 중단돼 자동차가 없으면 빠져나가기 힘들 만큼 고립됐다.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까지 자동차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30분이면 닿는 거리지만 도로 곳곳이 차단되면서 두 배인 3시간 가량 소요됐다.
평소 주말이면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였을 구마모토성(城)은 거대한 성곽 외벽이 무너지고, 누각마저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구마모토성 주변 니코호텔 등 대부분 호텔은 ‘휴업중’이라는 안내장을 내걸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호텔 직원은 “단전·단수로 호텔방을 운영할 수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구마모토시에서만 32만가구에 물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고 손으로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계속되는 여진에 건물이 흔들리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집을 떠나 피난소로 대피한 주민만 19만명이 넘는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식량과 물을 배급하는 긴급구호센터에는 어림잡아 100m는 돼보이는 긴 행렬로 장사진을 이뤘다. 문을 연 주유소마다 기름을 채우려는 자동차들이 도로 한 편에 긴 행렬을 이루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계속된 여진에 주택 붕괴우려가 커지자 교외 빈 공터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텐트를 치고 노숙에 나선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시내 구마모토현청 1층에는 종이박스와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장기전에 돌입한 피난민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구마모토현과 인근 지역에서 피난한 주민들은 이날 현재 19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귀엽고 친근한 곰 캐릭터 ‘구마몬’으로 쌓아온 구마모토시 관광 브랜드 이미지는 강진 공포에 묻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구조활동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피해지 방문을 미룬 아베 신조 총리는 “고령자와 유아들을 우선 배려하고,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했다. 피난민들에게 제때 생수와 식량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피난자들이 3일간 먹을 수 있도록 90만명분의 식사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첫 강진이 발생한 후 진앙지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여진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후쿠오카현, 오이타현 등 규슈 전역에 걸쳐 지진 경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오키 겐 기상청 과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여러 곳에 걸쳐 지진이 발생한 사례는 근대관측을 시작한 이래 없었다”고 말했다. 국토지리원은 “구마모토지진에서 발생한 에너지는 고베 대지진의 1.4배로 더 강했다”고 분석했다. 진앙지 부근 미나미아소무라 지각이 서쪽으로 97cm 이동했을 정도다.
규슈 전체가 지진 비상상황에 빠지면서 경제적 피해도 확산되고 있다. 세계최대 자동차회사 도요타자동차 자회사인 도요타규슈는 후쿠오카현 공장 3곳 가동을 멈췄고, 도요타에 자동차부품을 공급하는 아이신세이키도 구마모토시 공장 조업을 중단했다. 혼 역시도 오토바이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고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전자업체 파나소닉, 소니, 미쓰비시전기는 구마모토, 나가사키에 자리잡고 있는 공장 조업을 일부 중단하고 생산라인 점검과 직원 피해현황 파악에 나섰다.
규슈 온천 관광지에 고립된 자국민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다. 한국 정부는 이날 구마모토현에 외교부 재외국민보호 관련 부서와 주후쿠오카 총영사관 관계자 4명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을 파견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후쿠오카에서 집결, 구마모토 현으로 출발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구마모토현이 있는 규슈 지역에는 2만3000여 명, 구마모토현에는 1000여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지만 17일 현재 특별한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도 16일 긴급 임시 운항편을 띄워 현지 체류중이던 한국인 119명을 국내로 이송했다. 중국 여행업계와 홍콩 정부는 구마모토현에 대해 여행제한·여행 경보를 발령하고 주의를 촉구했다. 홍콩 정부 대변인은 구마모토를 방문할 계획이 있거나 이미 방문한 사람들은 현지 상황을 주시하고 개인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며 지진 발생 지역 여행을 피하
[구마모토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박용범 기자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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