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교국 쿠바 첫 방문한 윤병세, '교류 모드'로 전환되나
↑ 미수교국 쿠바 첫 방문/사진=MBN |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첫 쿠바 방문은 쿠바 혁명 이후 반세기 이상 소원한 사이를 이어 온 양국이 관계 진전을 이루는 중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양국은 체제의 상이함과 미수교국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1990년대 냉전 종식과 함께 조금씩 접근을 모색해 왔고, 관계 진전의 토양도 나름대로 마련된 상태입니다.
당초 한·쿠바 관계는 우호적으로 출발했습니다. 미국이 후원하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이듬해 승인하고 6·25 전쟁 당시 우리 측에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양국은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한 후 일절 교류를 끊고 국제무대에서도 접촉을 삼갔다. 이 때문에 아직 정식 외교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냉전 시기 동안 계속되던 양국 간 냉기류는 1999년 한국이 유엔 총회의 대(對)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면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미국을 의식해 결의안에 기권해오던 한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입장을 선회했고, 이를 계기로 쿠바 측의 대(對) 한국 인식도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양국은 경제·통상 분야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교류의 물꼬를 텄습니다.
코트라(KOTRA)가 2002년 쿠바와 처음으로 무역투자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05년에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 우리 무역관을 개설했습니다.
2005년까지 연간 4천만 달러 수준이던 우리나라의 대(對)쿠바 수출도 현대중공업의 발전기 수출 등에 힘입어 2006∼2008년에는 2억∼3억 달러 수준으로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을 비롯한 민간 교류 활성화가 양국 관계 진전을 견인하는 모양새입니다.
2013년 쿠바에서 방영된 '내조의 여왕', '시크릿 가든' 등 한국 드라마는 쿠바 국민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쿠바를 찾는 한국 관광객도 지난해 7천5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양국 국민 간에는 이미 '마음의 장벽'이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양국 외교장관이 2013년 유엔 총회 때 열린 한·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회의 계기에 면담하고, 2014년에는 쿠바 외교부 아주국장과 다자·국제법 총국장(차관보급)이 다자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는 등 정부 간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정경원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장은 5일 "경제적 실리주의가 쿠바 국민 전반에 퍼져 있고 한류 바람으로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가 마련돼 있다"며 "그런 토양이 윤병세 장관의 쿠바 방문을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동안 양국 간에는 더러 관계 정상화와 관련한 논의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쿠바는 한국과 경제 등 비정치적 교류를 확대하면서도 정치·군사적으로는 북한과 공고한 '혈맹관계'를 이어 오며 국제무대에서 상호 입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 혁명정권 수립 직후인 1960년 수교했으며 1986년 카스트로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친선협조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카스트로는 방북 당시 김일성으로부터 소총 10만 정과 탄약을 무상으로 받은 일을 최근 저서에서도 회고하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쿠바에서 출발한 북한 선박에서 다량의 무기가 적발된 '청천강호' 사건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양국의 군사 교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북한은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하자 김영철 대남 비서를 직접 파견하는 등 얼마 남지 않은 외교적 보루인 쿠바를 각별히 챙기고 있습
그러나 쿠바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반대하고, 정책적으로도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쿠바 관계에 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정경원 소장은 "북한과 실리 없는 혈맹국 노선을 견지하는 것보다 정치와 경제·문화를 실리적으로 분리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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