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뉴욕 최고 명소 중 하나인 ‘모마’(MoMA· 뉴욕현대미술관)에서 TV를 판매한다. 고흐, 피카소, 마네, 고갱 등 근현대 예술 거장들의 작품이 총망라되어 있는 세계최고 수준의 미술관에서 삼성 TV가 ‘예술품’과 같은 대접을 받은 것이다. 모마 87년 역사상 상업용 TV를 파는건 처음이다.
13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53가에 위치한 모마에선 가전업계 주요 인사, 패션·인테리어 업계, 미국 현지 기자 등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삼성 세리프(Serif) TV(40인치형)를 미국시장에 공식 런칭하는 행사가 열렸다. 삼성전자가 모마를 제품 출시 장소로 활용한 것도 이번이 최초다.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인 로낭·에르완 부훌렉 형제가 디자인한 세리프 TV는 글자의 끝을 약간 튀어나오게 한 ‘세리프’ 글꼴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TV 테두리를 옆에서 보면 영어 알파벳 ‘대문자 I’를 떠올리게 한다. TV 테두리 밑으로는 4개 다리가 달려 있다. 마치 나무장 안에 설치된 TV 처럼 고전적 느낌의 가구를 연상시킨다.
삼성전자가 세리프 TV 프로젝트를 착수한건 3년 전. 2006년 이후 글로벌 TV 시장 1위를 한번도 놓치지 않고 있는 삼성전자는 가구와 인테리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색다른 차원의 TV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이 이 프로젝트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거실의 중심을 차지하는 TV 답게 기존 제품과 차별화되는 ‘재해석’을 시도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소비자군을 발굴할 수 있을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제품 디자인도 당대 최고의 가구 디자이너에게 의뢰했다. 부훌렉 형제는 TV를 20년간 거의 본적이 없는 워커홀릭으로 TV에 대한 관점이 달랐다. ‘TV도 가구’라는 인식하에 TV 기술과 디자인이 조화롭게 어루어지는 예술적 가치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영국에서 개최된 ‘런던디자인페스티벌’을 세리프 TV의 첫 공개 장소로 택했다. 이 때 행사에 참가한 엠마뉴엘 플랫 모마스토어 판매총괄 디렉터는 세리프 TV에 한순간 시선이 꽂혔다. 플랫 디렉터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TV를 보는 순간 모마에서 판매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며 “이렇게 아름답고 모던한 디자인의 TV는 모마의 정체성과도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즉시 삼성전자를 접촉해 이 제품을 모마에서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 제품의 미국 출시 시점조차 결정하지 못했지만 모마의 요구를 계기로 미국 출시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세리프 TV 유통채널을 기존 TV와는 철저하게 차별화했다. 현지 가전 유통망에 이 제품을 공급하지 않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9월 하순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9개국에 세리프 TV 24·32·40인치 모델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최고급 백화점과 럭셔리 가구점에만 제품을 진열하는 선별적 마케팅 전략을 고집했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 퐁피두예술문화센터와 최고급 백화점인 봉마르쉐백화점에서만 세리프 TV를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뉴욕 소재 모마스토어 3곳과 모마 온라인숍을 비롯해 쿠퍼휴잇박물관과 미국 주요 고급 백화점으로 판매처를 한정할 방침이다. 미국 판매가는 1499달러(약 172만원·세전 기준)다.
데이브 다스 삼성전자 미국법인 상무는 “소비자들은 삼성 TV의 뛰어난 화질뿐 아니라 생활 공간의 미적가치를 높여주는 디자인 요소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유럽
비디오 크리에이티브 감독인 조 엔카나시온씨(39)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세리프 TV는 뉴요커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에 맞는 TV”라며 “TV라기 보다 미술관의 아트 작품같다”고 말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