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경제공약 발표를 통해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에 돌입했다. 특히 조세정책 분야에서 상반된 시각을 드러내며 맞불을 놓는 양상이다.
트럼프는 8일(현지시간)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로 꼽히는 디트로이트에서 경제공약을 발표하면서 “레이건 행정부의 세제 개혁 이후 최대 규모가 될 세제 혁명”이라며 화끈한 조세정책 구상을 꺼내들었다.
트럼프는 현재 최고 35%에 달하는 법인세율을 15%로 절반 이상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에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공화당 주도의 미 하원에서 제시한 법인세 20% 방안 보다 더 낮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외국에 쌓아둔 현금을 미국으로 다시 들여올 때 10%의 세금만 부과하겠다”며 “이를 통해 들어온 돈은 미시간주 같은 곳에 재투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0%에서 39.6%까지 7단계로 세분화된 소득세율은 12%, 25%, 33%의 3단계로 간소화하겠다는 구상도 피력했다. 이는 그가 종전에 제시했던 10%, 20%, 25%에 비해 다소 올라간 것이다. 파격적인 공약도 계속됐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상속세를 폐지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미국 노동자들이 평생 세금을 내 왔고 따라서 사망한 다음에 다시 과세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육아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소득공제 대상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점도 눈길을 끈다. 트럼프는 “앞으로 몇 주 뒤에 이방카와 훌륭한 전문가들이 만들고 있는 육아 관련 정책을 발표하겠다”고 언급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집무를 시작하자마자 이전 행정부에서 새로 만든 규제를 한시적으로 정지시키겠다”고도 했다.
이에 맞서 힐러리 클린턴은 연 소득이 500만달러(약 54억원) 이상인 소득 최상위층에게 4%의 부유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납세자 중 상위 0.02%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들이 낸 세금으로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힐러리 후보가 중산층의 세금 정책에는 변화를 주지 않겠다는 점을 시사한 만큼 공약 실천을 위해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끌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힐러리 후보도 11일 디트로이트 유세에서 좀더 구체적인 경제공약을 천명할 예정이다.
최저임금의 경우 힐러리는 현행 시간당 7.5달러를 15달러로 인상한다는 공약을 내놨다. 힐러리는 민주당 경선 초반에 12달러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후 경선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그의 15달러 인상안을 수용했다.
힐러리는 트럼프의 경제 공약이 “미국 경제와 대다수의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공격의 날을 세웠다. 이날 플로리다에서 유세에 나선 힐러리는 트럼프의 공약이 “1%의 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조치”라며 “트럼프는 국가 안보뿐 아니라 국가 경제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트럼프가 자신의 경제공약을 위해 구성한 경제팀에 ‘스티브’라는 이름을 가진 6명의 헤지펀드·억만장자 등이 포함된 것을 비꼬면서 “6명의 스티브들이 오래되고 진부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것처럼 들리게 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자신과 같은 거부에게 세금 혜택을 주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
한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줄곧 고수해온 트럼프는 이날도 한·미 FTA에 대해 “7만개가 늘어날 것이라던 일자리는 10만개가 줄었다”며 “너무도 많은 미국 노동자를 아프게 만든 ‘깨진 약속’의 사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박대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