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계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이 군위안부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가토 고이치 전 관방장관이 지난 9일 7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가토 전 관방장관은 폐렴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던 도쿄 내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64년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서 근무를 시작한 가토 전 관방장관은 1972년 중의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13선 경력을 쌓으면서 방위청 장관, 자민당 간사장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1992년 7월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 당시 관방장관 자격으로 “일본군 위안소의 설치 및 운영·감독 등에 일본 정부가 관여했다”고 인정한 이른바 ‘가토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이 위안부 강제연행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1993년 ‘고노 담화’가 나왔다. 고노 담화는 군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가 발표했다.
가토 전 관방장관은 2000년 모리 요시로 총리에 맞선 이른바 ‘가토의 난’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자민당 간사장을 맡았던 그는 야당이 제출한 내각 불신임안에 찬성한다는 뜻을 나타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면서 소수파로 전락했다.
가토 전 관방장관은 1990년대 일본 정계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 등과 함께 ‘YKK’라는 연대를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 재임 당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고이즈미 전 총리 지지자가 그의 사무실을 전소시키기도 했다.
유력한 총리 후보로 꼽혔으나 2002년 자신의 비서가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거
자민당과 일본 정부의 요직을 지낸 그는 아베 신조 총리의 고노 담화 수정 움직임을 비판했으며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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