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 보험료 인상과 힐러리 이메일 재수사 파장으로 대역전 드라마의 발판을 마련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선거인단 29명의 최대 경합주 플로리다에서 ‘뒤집기’에 나섰다.
2일(현지시간) 오후 4시. 플로리다 올랜도 페어그라운드 원형극장에 트럼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회자는 더 이상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후보’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트럼프”라고 불렀다. 유세장을 가득 메운 2000여명 청중은 “미국을 위대하게, 힐러리는 감옥에”를 외쳤다.
트럼프는 플로리다 남부 최대도시 마이애미 유세를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올랜도 유세 후에는 펜서콜라에서 한번 더 유세를 하고 다음 날 잭슨빌까지 찍는 등 플로리다에 각별히 공을 들인다.
연단에 오른 트럼프는 “오하이오 아이오와는 물론이고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니아까지 트럼프 쪽으로 돌아섰다”며 “플로리다의 위대함을 보여달라. 일주일 후 가족과 친지들 모두 데리고 투표하러 가자”고 독려했다.
트럼프는 오바마케어와 힐러리 이메일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그는 “오바마케어로 보험료가 두 자릿수나 올랐다. 이게 말이 되느냐”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오바마케어 끝장내고 보험료를 원상복구시키겠다”고 소리쳤다. 또 “감옥에 가야 할 힐러리가 지금 유세를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힐러리는 당선이 되더라도 곧 형사재판에 서게 될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지난 6월 사상 최악의 총기참사와 10월 허리케인 ‘매튜’가 할퀴고 간 상흔이 아직도 여전한 올랜도에서 트럼프는 “더 강한 미국, 더 안전한 미국, 더 위대한 미국”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은 탓인지 유세장을 찾은 트럼프 지지자들도 기세가 등등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CNN 방송 카메라가 등장하자 “꺼져라 CNN”을 외치기도 했다.
주한미군에 3년간 복무했다는 60대 백인 남성 트렌트씨는 “북한에 미치광이가 있지 않느냐. 트럼프가 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힐러리로는 안된다. 오바마 힐러리가 망쳐놓은 탓에 ‘북쪽의 김’은 지금도 미사일 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위민 포 트럼프(Women for Trump)’ 팻말을 든 여성 유권자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자신을 ‘마야’라고 소개한 20대 백인 여성에게 ‘트럼프가 여성을 비하하고 추행했다는데’라고 묻자 “트럼프를 비호할 마음은 없다. 트럼프가 잘못한 거 맞다”면서도 “하지만 트럼프의 행동은 10년도 넘은 과거의 일인데 힐러리의 거짓말은 ‘현재진행형’이다”라고 강조했다.
열렬 지지자들은 트럼프 도착 4시간 전부터 500여명이 행사장 입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으며 트럼프가 다음 유세장으로 떠난 후에도 한동안 머물며 힐러리 분장으로 죄수복을 입는 퍼포먼스를 즐겼다.
유세장을 가득 메운 트럼프 지지자들 중에서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을 찾기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면 간식과 음료수를 팔거나 트럼프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은 대부분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었다.
언론에 부정적인 트럼프 성향이 반영된 듯 기자석은 유세장 뒷편에 협소하게 마련됐다. 또 지역언론을 우선한다는 기준을 내세워 외신기자들과 일부 트럼프에 비판적인 언론을 배제해 빈축을 샀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힐러리에게 조기투표한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보라”며 투표 번복을 촉구했다. 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니아 뉴욕 코네티컷 미시시피 등 6개 주는 조기투표나 부재자투표를 했더라도 3번까지 번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날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아이오와 등 주요 경합지가 트럼프 쪽으로 기울었다는 소식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힐러리 진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여사, 조 바이든 부통령,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이 미국 전역으로 총출동해 수습에 나섰다.
힐러리가 2일 애리조나 펨페에서 유세를 하는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경선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의원은 미시건의 한 대학에서 유세를 펼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 흑인사회를 향해 “내 얼굴을 봐서라도 힐러리를 찍어달라”며 격정적인 호소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사는 암시나 부정확한 정보 누설, 이런 걸로 하는 게 아니다”면서 힐러리 이메일 재수사에 나선 연방수사국(FBI)과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비난했다. 현직 대통령이 FBI 수사를 공개비판하는 것
바이든 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에서 트럼프와 동선을 달리하며 은퇴 노인들을 만나 힐러리 지지를 독려했다. 한편 공화당 소속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힐러리에게 투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랜도(플로리다) = 이진명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