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TPP 탈퇴 선언 '후폭풍'…아시아서 中 위상 더 커질 듯
↑ 트럼프 TPP 탈퇴 선언 / 사진=연합뉴스 |
20일(현지시간) 폐막한 올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존재가 유독 두드러져 높아진 중국의 위상을 새삼 실감케 했습니다.
23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폐막 전날 열린 만찬장 중앙에는 시 주석이 부인과 함께 앉았습니다. 그동안 이런 행사의 중앙 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정석'이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오바마 대통령의 자리는 시 주석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이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오바마 대통령의 자리는 이런 행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가장자리 쪽이었습니다. APEC 같은 국제회의 자리배치는 의장국의 속내와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지난해 11월 마닐라에서 열린 작년 APEC과는 전혀 다른 좌석배치였습니다.
작년 회의 의장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국제중재재판소로 끌고 간 베니그노 아키노 당시 대통령이었습니다. 만찬장의 좌석배치는 상석에 해당하는 의장석 주변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 등이 앉았습니다. 시 주석의 자리는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당시 행사에선 만찬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장내에 갑자기 쇼팽의 '혁명'이 흘러나왔습니다. 쇼팽이 연주여행차 조국 폴란드를 떠나 있는 사이에 러시아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했던 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바르샤바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해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곡입니다.
아키노 대통령은 1986년 당시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피플파워 혁명'을 이끈 코라손 아키노의 아들입니다. 필리핀은 혁명에 성공했지만, 중국은 지금도 공산당 일당 독재가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시 주석에 대한 분명한 빈정거림이었습니다. 의장인 아키노 대통령의 의도를 알아차린 정상 몇 명이 시 주석의 얼굴을 슬쩍 살펴봤지만,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평정을 가장한 것인지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만 1년. 아키노가 물러나고 올해 6월 "미국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하자 남중국해 문제는 갑자기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중재재판소가 7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전면 기각해 필리핀이 큰 승리를 거뒀지만 두테르테는 "중국과의 양국 간 협의"를 내세워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없다"는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순풍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 주석은 이번 APEC에서 "남중국해 문제 보류"를 공공연히 요구하기까지 했지만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렇게 된 배경에 중국 외교부의 빈틈없는 준비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9월 항저우(杭州)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APEC 준비에 들어가 9월 중순 2개월 전에 갓 취임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을 중국으로 초청해 시 주석을 비롯, 공산당 서열 1~3위가 모두 개별적으로 만나는 등 파격적인 환대를 했습니다. 10월에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페루를 방문해 '세계의 대국'을 연출할 무대를 정비했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첫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중국의 위상 강화에 도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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