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줄이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국제유가 추락을 막지 못했다. 산유국 감산 합의에서 벗어나 있는 리비아와 나이지리아, 미국 셰일업계가 생산량을 늘리면서 감산 효과를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OPEC의 감산 합의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이대로 가면 장기적으로 더 하락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7월 인도분은 전 거래일보다 0.97달러(2.2%) 하락한 배럴당 43.2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9월 16일(배럴당 43.03달러) 이후 9개월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가는 지난 2월 23일 전 고점(54.45달러)과 비교해 20.6% 떨어지면서 지난해 8월 이후 다시 '베어마켓'(약세장)에 진입했다. 전 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하면 베어마켓에, 전 저점 대비 20% 이상 상승하면 불마켓(강세장)에 진입했다고 표현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4년간 총 6번의 약세장을 맞았다고 전했다.
내전에 비틀거리던 리비아는 빠른 속도로 산유량을 늘려 2013년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리비아 국영 석유공사(NOC)에 따르면 리비아 산유량은 하루 평균 90만2000배럴로 집계됐다. 지난 4월에는 하루 70만배럴 수준이었다. 나이지리아의 원유 수출량도 껑충 뛰었다.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는 OPEC 회원국이지만 내전과 송유관 파손 등을 이유로 OPEC의 감산 이행 대상에서 제외됐다.
무엇보다 OPEC 산유량 감축에 따른 유가 상승은 미국 셰일업체들에게 '부활의 날개'를 달아줬고 이들 업체의 생산량 증가는 유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미국의 시추공 수는 22주 연속으로 늘었다. 유전정보 서비스업체인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가스 시추공 수는 지난 1월 13일 659개에서 이달 16일 933개로 40% 이상 급증했다. 시추공 수는 미국의 향후 셰일오일 산유량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지표다.
우선 파놓기만 하고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채굴 대기 유전'(프래크로그)도 지난달 말 5946개에 달한다. 블룸버그는 "이는 3년래 최대치로 향후 원유 생산량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유가가 현재보다 떨어져도 생산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유가가 55달러 수준일 때 매도헤징 보험에 가입한 덕분이다. 이에 더해 셰일업체들은 생산공정을 효율적으로 전환해 시추 비용을 절감했다. 셰일업체들이 새롭게 공들이고 있는 퍼미안 분지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배럴당 35달러까지 낮췄다. 찰스 체링턴 아거스에너지매니저 공동창업자는 "유가가 40달러를 웃돌 경우 셰일업체들은 계속 새로운 유정을 개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큰 문제는 유가 급락세가 다른 상품시장과 증시, 에너지 관련 회사채, 신흥국 위험자산에 연쇄적인 충격파를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모건스탠리는 OPEC이 수급 균형을 유지하기 원한다면 감산을 내년 말까지 연장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달 25일 OPEC이 일일 180만배럴 감산을 내년 3월까지 9개월 연장하기로 했지만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원유 컨설팅업체 FGE의 페레이던 페샤라키 회장은 최근 한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시장에 미국, 리비아, 나이지리아산 원유
어게인캐피털의 존 키덜프는 "유가의 다음 기술적 목표가는 39.19달러"라며 "OPEC이 반응하기 전까지 유가는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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