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집사육을 거부하고 닭이 날개를 펴고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김주진 박사의 양계장. [사진 = 박재영 기자] |
이번 살충제 계란 파문에서 드러난 대표적 문제가 '밀집사육'이다. 시멘트 바닥에 가로세로 20~30cm A4 한장 크기에 불과한 닭장에서 산란하는 게 보통인 농장에선 산란계가 스스로 진드기를 제거할 방법이 없어 농가들은 '고육지책'으로 살충제를 뿌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산란계 농가의 94%인 1370여 곳 농가가 밀집형 케이지를 사용해 닭을 키운다.
김 박사의 농장에선 닭들이 스스로 흙목욕을 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사육장 곳곳엔 닭이 흙목욕을 하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와 진드기를 흙목욕후 날개로 털어내며 같이 떨어진 깃털이 수북했다. 김박사가 닭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또 다른 비결은 자연공급 방식의 모이다.
인공사료를 직접 닭에게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 먹을 수 있도록 사육장 흙바닥 속에 등겨와 낙옆, 잔반을 섞어 발효하는 방식으로 공급한다. 그는 "공장식 사육으로 흙목욕이 불가능한 것도 문제지만 산란장들이 화학 합성 사료를 주며 닭을 키우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라며 "인위적인 사료가 닭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흙에 함유된 미생물을 스스로 섭취해야 닭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생물 중 좋은 성분은 그대로 도움이 되지만, 해로운 성분도 면역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5년째 닭을 키우지만 인근 농장에 조류독감 덮칠 대도 여긴 피해 한번도 없었다"며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한겨울에 밖에 내놓고 키워도 모두 건강하다"고 말했다.
이 곳 산란장에선 닭들의 분뇨도 따로 치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닭사육에 문외한인 기자도 코끝에 닿은 냄새가 며칠 전 찾아갔던 공장형 사육장의 코를 찌르는 분뇨내와는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발효된 먹이 냄새 외엔 양계장 특유의 불쾌한 냄새를 느낄 수 없었다. 김 박사는 "5년동안 한번도 분뇨를 치우지 않아도 다시 흙과 함께 발효가 돼서 아무 문제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김박사는 공대를 졸업후 20년간 섬유 분야 무역업을 했다고 한다. 김박사는 "퇴직에 즈음에 '기적의 사과'라는 책에 썩지 않는 사과 내용을 보고 자연농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 박사 학위까지 땄다"고 말했다. 김박사는 이 곳 방사형 양계장 뿐 아니라 '혜림원'이라는 무농약·무비료·무제초제 방식의 자연농장도 가꾸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같은 자연농 방식의 양계 및 산란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도 설명했다. 그는 "닭이 200여 마리 가량 되지만 하루 계란 생산량은 50개 정도"라며 "원가가 배로 들어가기 때문에 주문하는 소수 고객들에게만 공급하고 개당 1000원 정도의 높은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다"라고
국내에서 대량으로 계란을 공급하는 산란장에 이런 방식을 무조건 강요하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제 식료품이 절대적으로 양이 부족한 시기는 지나지 않았냐"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다양한 측면에서 양계방식이 다양화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양평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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