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아일랜드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북아일랜드의 엄격한 낙태금지 규정의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내에서 유일하게 낙태를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는 지역입니다.
22일(현지시간) 공영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인 170명 이상이 이날 일간 더타임스에 실린 북아일랜드의 낙태금지 규정 개선 요구 서한에 서명했습니다.
서명에는 영국 집권 보수당과 제1야당인 노동당, 아일랜드 민족주의당 정당인 신페인당 소속 의원들까지 참여했습니다.
영국은 의사 두 명의 동의 아래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24주 이후에도 산모 건강, 심각한 기형 등의 예외사유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여성의 생명에 위협이 있거나,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영구적이고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우려될 경우에만 낙태가 가능합니다.
성폭행, 근친상간, 태아 기형 등의 사유도 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이를 어길 경우 최고 종신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영국 대법원은 지난달 북아일랜드의 엄격한 낙태금지법이 인권에 위배된다고 밝혔고, 유엔 역시 북아일랜드 여성의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잉글랜드 등 영국 다른 지역에서 낙태 시술을 받는 북아일랜드 여성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낙태 관련 자선단체인 영국 임신자문서비스(BPAS)에 따르면 올해 3∼5월 12세 청소년을 포함해 342명의 북아일랜드 여성이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잉글랜드를 찾았습니다.
정치인들의 이번 서명은 오는 25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레오 바라드카르 아일랜드 총리의 만남을 앞둔 가운데 나와 주목됩니다.
서명에 참여한 노동당의 스텔라 크리시 하원의원은 벨파스트(굿 프라이데이) 평화협정에 따르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정부는 동등한 법을 가져야 하므로, 서로 다른 낙태금지 규정을 갖는 것은 협정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초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 역시 엄격한 낙태금지를 규정한 헌법조항을 갖고 있었으나 지난 5월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그동안 북아일랜드의 낙태금지 규정 개정은 북아일랜드 의회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이는 메이 총리의 보수당이 정권 유지를 위해 북아일랜드 지역에 기분을 둔 민주연합당(DUP)과 연정을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DUP는 사형제 부활, 성 소수자 차별은 물론 낙태 반대 등 보수적인
보수당 정부가 섣불리 낙태금지 규정 폐지를 받아들이면 연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크리시 의원은 "북아일랜드 여성의 인권이 잊혀져서는 안된다"면서 "굿 프라이데이 협정 아래서 우리는 이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