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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콰도르 정부가 시민 이동제한 조치를 하기 전인 지난 달 20일(현지시간), 과야킬 지역에서 연금·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선 가운데 반대편에서 한 할머니가 마스크를 쓴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통신 = 연합뉴스] |
'바나나와 산유국'으로 유명한 에콰도르가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판데믹(COVID-19대유행) 탓에 공포에 휩싸였다. 의심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고통을 호소해도 응급차가 오지 않고, 고통 속에 쓰러져 죽은 사람 시신이 길거리에서 발견된다는 시민들 목격담이 오가면서 민심도 흉흉해졌다.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세번째로 면적이 작은 나라이지만 가장 규모가 큰 브라질에 이어 코로나19사망자가 두 번째로 많다.
1일(현지시간) 에콰도르 보건부 공식 발표 등에 따르면 현지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총 2748명이고, 사망자는 총 93명이다. 하지만 취약한 의료 시스템 탓에 비공식 사망자가 무더기로 늘어나는 모양새다. 이를 의식한 다르윈 하린 해군 사령관은 "과야킬 주의 시신을 2일 저녁까지 전부 매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린 사령관은 지난 30일 부로 과야킬 주 과야스 지역 상황 통제조정관 역할을 하고 있다.
![에콰도르 내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과야킬의 한 거리에서 방역 관계자가 거리에 쓰러진 채 발견된 한 시민의 시체를 치우고 있다. [로이터통신 = 연합뉴스]](//img.mbn.co.kr/newmbn/white.PNG) |
↑ 에콰도르 내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과야킬의 한 거리에서 방역 관계자가 거리에 쓰러진 채 발견된 한 시민의 시체를 치우고 있다. [로이터통신 = 연합뉴스] |
이 조치는 에콰도르 내 코로나19 피해가 80%가까이 집중된 과야킬에서 각 가정과 거리마다 코로나19사망자로 보이는 시신들이 방치돼있다는 주민들의 호소에 따른 것이다. 에콰도르 수도는 키토지만 과야킬은 사실상 경제·산업 중심지로 인구가 두 번째로 많다.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른 코로나19 사망자는 90명선이지만 현지 신문 엘코메르시오 등에 따르면 지난 달 마지막 한 주 동안 과야킬 주 과야소 일대에서만 사망자가 300여명 나왔고, 이는 평상시보다 유독 많은 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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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콰도르에서 코로나19 의심증세를 보여도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거리에서 쓰러져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며칠째 방치되자 과야킬에 사는 블랑카 몬카다 기자는 동료들과 함께 트위터에 사망자 이름과 시신이 발견된 거리를 적은 메모를 매일 기록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트위터] |
의료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사람들이 진단 테스트 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사망 선고를 할 의료 인력이 부족해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는 상태다. 코로나19사태와 관련해 과야킬 주민인 헤시카 카스타네다 씨는 1일 BBC인터뷰에서 "삼촌이 병원에 입원하려했지만 병상이 없어 집에 돌아왔고, 지난달 28일 심하게 아팠다"면서 "응급차를 불렀지만 오지 않아 그날 삼촌이 죽었고, 시신은 아직도 집 침대에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과야킬 주민인 신티아 비테리씨는 "보건 시스템이 마비됐다"면서 "병원 앞 좁은 길목에 시신이 굴러다닐 지경이다. 병원 침대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텔레수르 방송은 "길게는 닷새까지 길거리에 시신이 방치돼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텔레그라포 신문 기자인 헤시카 삼브라노씨는 "지인이 장보러 나갔다가 페드로카르보 거리와 우르다네타 거리에서 여성 시신을 봤다"면서 "전에는 또 다른 지인이 인근에 시신 몇 구가 버려져있다고 했다. 이런 목격담이 종종 들린다"고 말했다. 고인이 혹여 코로나19 감염자일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선뜻 시신을 건드릴 수 없어 비참한 현실이 이어진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현지 언론 엑스프레소의 블랑카 몬카다 기자는 트위터로 가족이나 이웃의 죽음을 기록하는 계정을 만들었다. 그는 "지인이 죽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시신을 침대에 둔 채 의료진이 올 때까지 72시간 기다리는 상황이 말도 안된다"면서 "과야킬은 슬픔이라는 먹구름으로 가득찼다. 누구라도 나서야 해서 이런 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에콰도르에서 전통 복장을 입은 한 여성이 마스크를 낀 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BBC]](//img.mbn.co.kr/newmbn/white.PNG) |
↑ 에콰도르에서 전통 복장을 입은 한 여성이 마스크를 낀 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BBC] |
에콰도르는 중남미에서 가장 먼저 봉쇄령을 선언한 나라다. 지난 달 11일부로 정부는 통금령을 발령했고, 추가로 이동 제한 단속에 이어 15일 국제선 입국을 전부 막았다. 그럼에도 유독 에콰도르 피해가 돋보이는 이유로 현지 언론은 크게 세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부실한 공공 의료체계 탓이다. 또 피해가 집중된 과야킬이 스페인계 이주민 다수 거주지역이라는 특성상 스페인으로부터 코로나19가 들어와 확산됐을 가능성도 꼽힌다. 실제로 에콰도르 내 코로나19관련 첫 피해는 지난 2월 14일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 토레혼 데 아르도스에서 입국한 71세 여성이 확진판정을 받은 사례다. 마지막으로는 끌어안기 등 밀접 접촉을 즐기는 사회 문화적 요인도 꼽힌다. 무증상 감염자에 의한 확산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카탈리나 안드라무노 보건부 장관이 사임하고 급히 후임을 지명하는 등 정부 내 혼선도 일었다.
여러 문제 중에서도 특히 부실한 공공 의료체계는 2차 피해 우려를 키울 것이라는 걱정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제대로 된 진단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그라세 나바레테 에과도르 공공보건연구원 박사는 BBC인터뷰에서 "정부가 의심증세를 보이는 사람들과 그러다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진단 테스트를 하지 못하면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셈"이라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가족들이 코로나19 감염자였을지도 모르는 고인의 장례식에 단체로 참석한다거다, 고인을 기린다면서 쓰던 침대 매트리스를 가져다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콰도르 정부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에콰도르는 산유국이지만 재정난에 시달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
IMF)으로부터 42억달러(약 5조200억원) 규모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했었다. 이에 따른 긴축 재정 일환으로 정부가 40여년만에 에너지(유류)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하자 가뜩이나 가난에 시달리던 시민들이 지난 해 말 불평등 항의 시위를 벌이면서 한 차례 혼란을 겪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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