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에게 유리하면 자화자찬을 쏟아내고 불리하면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지만 현 정권은 정도가 너무 심하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16일 비자금 사적 사용 논란에 휩싸여 취임 후 2년8개월 만에 불명예퇴진했다.
김씨는 '죽창가' '토착왜구' 등 현 정권의 '반일 캠페인'을 주도하며 앞장서 온 인사다.
김씨는 현재 국회에서 운영하는 카페 수익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중 일부를 개인적으로 착복한 의혹에 연루돼 고발된 상태다.
국가보훈처 감사에 따르면 김씨의 비자금 사용액은 지금까지 7256만원에 달한다.
김씨는 독립유공자 자녀들에게 써야 할 돈을 몰래 빼돌려 자신의 한복값, 이발비, 무허가 마사지 비용 등으로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의 희생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광복회 회장이 이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것은 순군선열을 욕되게 하는 부끄러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 정권은 김씨를 앞세운 '반일팔이'에는 적극 팔을 걷어부치면서도, 이번 비리와 불법에 대해선 애써 외면하며 침묵하고 있다.
조국·박원순·윤미향 사태의 판박이다.
2019년6월 광복회장에 취임한 김씨는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지목하고,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연설을 했다.
그런데 당시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박수를 쳤다.
청와대는 "기념사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사실상 김씨의 선동적인 발언을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석달전인 지난해 11월 광복회를 찾아 김 전 회장과 면담하면서 "친일 반민족 족벌언론이나 친일에 뿌리를 둔 정치세력들이 색깔론으로 비판할 때 위축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더구나 이 후보는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김 회장을 존경하고 있다"며 "내 마음의 광복형"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김씨가 비자금 조성 및 유용 의혹으로 중도 사퇴한 데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니 야당에서 정권과 이 후보를 향해 "비겁한 침묵을 깨고 사법정의 구현을 위해 최소한의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힐난하는 것 아닌가.
현 정권은 '촛불 청구서'를 들이대는 민주노총의 불법점거 농성도 짐짓 못본 체 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가 지난 10일 본사 건물을 기습 점거해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강 건너 불보듯 구경만 하고 있다.
괜히 자신들 표밭인 노동계를 건드렸다가 대선에서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회사측이 공동건조물 침입·재물손괴 등 혐의로 노조를 고소하고 비난 여론이 커지자, 경찰은 닷새만에야 관련자들에게 출석을 요청하며 마지못해 수사에 착수한 분위기다.
이러니 파업 장기화로 물량이 줄어 생계를 위협받는 비노조 택배기사들 입에서 "이게 나라가 맞느냐"는 분노와 절망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다.
조폭을 연상케하는 불법과 폭력이 버젓이 벌어지는데도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서기는 커녕, 도리어 기득권노조에 끌려만 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도무지 정상적인 법치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어디 이 뿐인가.
현 정권은 2020년 북한군 총격에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과 북한에 피랍된 납북자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도 북한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다.
피살된 공무원 유족이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편지를 반납하고, 대신 방한한 토마스 오헤야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17일 만나 "사망 경위와 관련해 충분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정권은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사건의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까지 내렸는데도 이를 거부한 채 항소한 상태다.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 퇴임후 피살사건 관련 정보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 최장 30년간 열어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대한항공 여객기 납북사건의 피해자 가족들 또한 킨타나 보고관을 만나 "KAL기 납북으로 북한에 억류됐던 11인의 송환을 북한 정부에 요구하고, 한국 정부도 이를 북한에 분명히 요구하도록 (킨타나 보고관이) 공개적으로 언급해달라"고 요청했다.
도대체 공무원 피살사건과 납북사건의 진상이 어떻길래 유가족들의 간곡한 하소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 정권이 그토록 내막을 꽁꽁 숨기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국가의 최우선 책무와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이다.
우리 국민이 북한 총격에 끔찍하게 살해되고 납치까지 됐는데도 이를 책임지고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커녕, 낡은 이념에 빠져 입조차 뻥끗하지 못하는 정권이라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미국 역사학자 마이클 베슐로스는 "최고 권력자의 침묵은 역사의 퇴행을 낳는다"고 했다.
"이게 나라가 맞느냐"는 국민적 공분이 들불처럼 확산하고,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과반을 넘는 것도 현 정권의 선택적 침묵과 표리부동한 행태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증표다.
정권이 이제라도 진영논리에 따른 편협한 국정운영과 코드인사에 대해 엄중
이 후보 역시 아무리 개혁과 실용을 외쳐도, 현 정권과의 선명한 차별화와 새로운 국정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장강의 물결 같은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 것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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