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뉴욕 증시에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직원 임금 인상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임금 인상을 통해 직원들의 이직과 퇴사를 막고 회사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임금 인상 움직임은 기업 영업이익을 줄이고 경제 전체적으로는 추가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지, 최근 미국의 생활 물가 급등세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주주들은 성과 대비 보상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경영진 보상 인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인재 확보와 물가 급등에 따른 생활비 상승을 이유로 일선 직원들 급여와 보상 수준을 인상한다고 16일(현지시간) 회사 메모를 통해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탁월성 예산'을 2배 가까이 책정해 초·중기 경력자와 특정 지역에서 일하는 직원 임금을 높이겠다는 식이다. 또 회사는 67등급 이하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간 주식 보상을 최소 25% 올려 지급할 계획이다. MS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59등급부터 80등급 이상까지로 분류하는데 67등급 이상부터는 파트너 등급이다.
MS가 직원들에게 주는 급여는 기본 연봉과 보너스, 자사주로 구성된다. 글래스도어 집계에 따르면 MS 신입 엔지니어 평균 급여는 약 16만3000달러이고 자사주는 등급에 따라 차등 지급 받는다. 이번 계획에 따라 전세계 직원 18만여 명 중 상당수가 임금 인상 효과를 보게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임금 인상은 올 들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경우 MS 경쟁사인 아마존은 앞서 2월에 임금 인상을 발표한 바 있다.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기본 급여 상한선을 16만 달러에서 35만 달러로 두 배 이상 늘리는 식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고숙련 노동자 마음 잡기에 나선 것은 이직에 따른 인재 유출 우려 때문이다. 동종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보수가 낮다는 직원 불만이 빗발쳤던 구글은 이달 초 직원 성과평가제도 재정비에 나섰다. 새로운 직원 평가 시스템 '구글 리뷰와 개발(GRAD)'은 동료 대신 관리자 채점을 중심으로 하는데 기존 평가보다 직원에게 더 높은 임금을 주기 위한 제도다. 연 2회 진행해온 평가 횟수를 한 번으로 줄인다. 회사는 이번 개편을 통해 직원 대다수가 더 높은 급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금 임상 물결은 저숙련 직군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고용비용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98% 뛰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저숙련 직군의 임금 인상 요구는 노조 설립 움직임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내 대형 식료품 유통업체 트레이더스 조의 경우 매사추세츠 소재 한 매장 직원들이 16일부로 노조 결성 투표에 나섰다. 또 다른 유통업체 타겟은 버지니아 소재 매장 직원들이 노조 선거를 치르기 위해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에 이달 초 승인 요청 서류를 제출했다. 이밖에 애플스토어 직원들도 뉴욕 주를 시작으로 조지아·애틀랜타·메릴랜드 주 등지에서 노조 설립에 나선 상태다.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 동안 접수된 노조 대표자 승인 요청 건수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7% 늘어난 1174건이다.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정부는 아마존과 스타벅스 노조 관계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이달 초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같은 변화는 미국 일자리 시장에서 노동 우위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은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미국 구직자 1인당 취업 가능한 일자리가 1.9개나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고숙련 직군의 경우 사무실 복귀 정책(RTO)에 대한 반발과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이유로 다른 경쟁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경영진 입장에서 인력 관리 리스크다. 저숙련 직군 역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노동자 부족 사태가 불거졌다.
다만 임금 인상 물결이 인플레이션을 더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월 1~5일에 걸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경제학자 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인플레이션 압박 요인으로 원자재·식품 값 고공행진(33%)에 이어 2위로 임금 인상(27%)을 꼽았다.
노동자들과 달리 기업 경영진들은 급여 인상이 녹록치 않은 분위기다. 미국 반도체 대기업 인텔 주주들은 팻 갤싱어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최고위 임원진에 대한 보상 안을 부결시켰다. 표결 결과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 권고일 뿐이지만 이같은 결과는 주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임원진들의 기업 회생 노력과 성과에 대한 감시 차원이라고 CNBC 는 풀이했다.
'월가의 황제'로 통하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 역시 급여 인상안이 부결될 가능성
[김인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