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 길어야 4개월…끝나자 또 찾아가 스토킹
'유치장 감금' 신청은 2배 넘게 늘어도 법원은 '잠잠'
'유치장 감금' 신청은 2배 넘게 늘어도 법원은 '잠잠'
↑ 지난 9월 1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 / 사진 = 연합뉴스 |
접근금지 풀리자 또…신당역 사건 잊었나
지난 9월 14일, 31세 전주환은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자신이 스토킹하던 피해자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스토킹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던 중이던 전 씨는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전 씨를 상대로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신변보호 조치가 미흡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계기관이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7일, 이번엔 서울 도봉구에서 70대 남성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채 스토킹해오던 피해자를 찾아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00m 이내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 기간이 끝난 뒤 다시 스토킹 행각을 벌이다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는 가벼운 부상을 입고 치료 중인 상황. 반복되는 스토킹 범죄에 피해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가시질 않습니다.
"남자가 찾아온 거, 접근금지 명령이 풀려가지고 계속 전화 걸고 그러고…." 인근 상인마저 알고 우려했던 다시 시작된 스토킹. 저희 취재진은 스토킹 범죄를 막기 위한 제도에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피해자가 원치 않아서"…공백을 파고드는 스토킹
스토킹 가해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일정 기간 가둔다면 피해자와 완벽히 분리할 수 있겠죠. '잠정조치 4호'가 바로 그런 조치인데, 경찰과 검찰이 신청·청구하면 법원이 결정내리며 이뤄집니다.
↑ 지난 7일 발생한 도봉구 스토킹 방화 사건 |
도봉구 스토킹 방화 사건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피해자가 처음 스토킹 신고를 접수한 건 지난 7월. 경찰은 당시 잠정조치 4호를 제외한 채 접근금지 등이 포함된 1·2·3호만 신청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피해자가 "찾아오지 않고 연락만 안 왔으면 좋겠다"고 진술해 4호는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27일 접근금지가 풀리자 가해자는 다시 피해자를 찾아와 음식을 가져다 놓는 등 스토킹 행각을 벌였습니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 지급' 등 피해자 안전조치를 안내했지만 요청이 없어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호조치에 공백이 생겼고 범행은 이뤄졌습니다.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경찰의 적극적인 보호조치가 있어야 했단 아쉬움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신당역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단 이유로 스토킹 신고 후 긴급응급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던만큼 비판을 피하긴 쉽지 않아보입니다. 두 사례처럼 경찰의 적극적인 보호조치는 여전히 잘 이뤄지지 않는걸까요? 저희 취재진은 신당역 사건이 벌어진 뒤 기간동안 경찰의 잠정조치 4호 신청 건수를 입수해 확인했습니다.
용혜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경찰이 적극적인 보호조치라 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한 건수는 50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신당역 사건이 벌어진 뒤 경찰은 잠정조치 4호 신청 건수를 늘렸는데 9월과 10월 신청건수는 각각 131건, 146건을 기록했습니다. 경찰의 적극적인 보호 노력은 3배 가까이 증가한 건데, 실제 보호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 출처 = 용혜인 의원실 |
법원의 결정 건수를 살펴봤습니다.
23건. 74건. 73건.
법원이 같은 기간 잠정조치 4호를 결정한 건수입니다. 경찰이 신청한 수의 절반 수준의 잠정조치 4호가 기각되는 건 신당역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변함 없습니다. 단지 '경찰이 잠정조치 4호를 포함해 적극적으로 보호조치를 신청하는지'뿐 아니라 '법원 또한 잠정조치를 잘 결정하고 있는지'도 지적하고 감시할 필요가 분명 있습니다.
낮아진 '위험 단계'와 '너무 짧은' 접근금지 기간
도봉구 스토킹 사건이 신당역 사건과 닮은 건 이 뿐만이 아닙니다. 신당역 사건에서 지난해 10월 스토킹 범죄로 고소당한 전 씨에 대해 경찰이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경찰은 신당역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루고 있는 스토킹 불송치 사건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위험도 조사 기준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도봉경찰서가 스토킹 방화 사건 가해자를 다시 들여다 본 시점도 이 때입니다. 해당 사건은 이미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돼 전수조사 대상은 아니었지만, 스토킹 범죄 심각성이 커진 만큼 도봉서가 피해자가 괜찮은지 파악에 나선 겁니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가해자가 더이상 안 찾아와 마음이 안정적이다"란 말을 들었고, 가해자의 위험도를 '위기'에서 '주의' 단계로 낮췄습니다.
↑ 도봉경찰서 외경 / 사진 = 연합뉴스 |
지난달 30일, 가해자의 스토킹이 다시 시작되고 신고가 접수되면서 가해자의 위험도는 '위기'로 올랐지만 잠정조치 등 보호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주의' 단계라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협박하면 잠정조치 4호도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범죄를 예측하지 못했고, 더 정교한 위험도 조사의 판단 기준이 필요한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접근금지 조치 역시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행법상 접근금지 조치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4개월입니다. 도봉구 스토킹 방화 사건 역시 가해자에 대해 7월에 신청된 접근금지는 4개월만인 11월에 종료됐습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가해자에 대한 '구속' 이지만, 경찰 단계에서의 잠정조치도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토킹 범죄가 기본적으로 반복성을 가지고 있어서 조치 기간을 연장하거나 길게 가져갈 필요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무적으로 어렵더라도 경찰 단계에서 신청하는 잠정조치의 효력 기간을 더 길게해줌으로써 피해자들이 안정을 취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단 지적입니다.
법무부는 지난 10월 19일 스토킹 범죄에 엄정 대응하기 위해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합의를 이유로 2차 범죄가 이뤄지지 않게 피해자 의사와 상관 없이 처벌"할 것과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신당역 사건이 벌어진 뒤 너무 늦은 대응이 아닌지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는데, 비판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관련
① 스토킹 신고 옛 연인 찾아가 불 지른 70대 입건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708060
② 접근금지 끝나면 다시 스토킹...근절 대책 없을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708282?ntype=RANKING
[ 이혁재 기자 yzpotato@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