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뉴스투데이

2013.01.21

[그 때 그사람]양영태 / 자유언론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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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이 아무리 찬란하게 빛나도, 지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1인자라 칭해졌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은데요.오늘 ‘그때 그 사람’에서는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 나름 소신을 갖고 정치 인생을 살아온 제5공화국의 1인자 허화평 전 의원과 관련 해, 양영태 자유언론인 협회장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1.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협회장님께 질문 하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격동기, 가장 민감한 때에 청와대에 계셨는데요. 어떤 분위기였나요?

    - 어떻게 박정희 대통령 주치의가 되셨는지, 이어 전두환 대통령 주치의까지 맡게 되셨는지가 궁금한데요?

    2. 오늘 5공화국의 브레인이라 불렸던 허화평 전 의원에 대해 말씀해주신다고 하셨는데요, 허화평 전 의원, 어떤 인물이었으며 5공화국에서 어떤 역할을 했었나요?

    - 당시 장군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실세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3. 12.12사태를 비롯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화국 집권계획까지 허화평 전 의원이 미리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그렇다면 당시 (어디 비서실장이었는지)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 전 의원은 이미, 당시 전두환 합수부장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봐도 될까요?

    4. ‘5공화국의 실세’하면 흔히 ‘3허’라고 하지 않습니까. 허문도, 허삼수, 허화평. 우연의 일치처럼 모두 허 씨였는데요, 이 세 사람의 역할과 관계는 어땠습니까?

    5. 실세 중의 실세였던 허화평 전 의원이 돌연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단순히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권부에서 밀려났다는 얘기도 있지만, 당시 장영자 사건과 관련한 결과라고 보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진짜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6. 허화평 전 의원이 5공화국의 캐치프레이즈로 생각했던 게 ‘정의사회구현’이라고 하는데요. 장영자 사건 때도 원칙적 처리를 주장한 것이 결국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움을 사게 된 것 같습니다. 허화평 전 의원을 직접 지켜보셔서 잘 아실 텐데, 정말 그렇습니까?

    7. 2005년 타 방송국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제 5공화국’이 큰 인기였죠. 특히 그 중 허화평 전 의원의 캐릭터가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었습니다. 실제로 드라마 캐릭터와 비슷한 면이 좀 있나요?(차이점, 공통점)

    - 드라마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허화평 전 의원 관계가 별로 좋진 않습니다만,
    실제로는 어떤 관계였나요?

    8. 허화평 전 의원은 1인자의 자리를 눈앞에 두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요, 만약,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니라 허화평 전 의원이 대권을 잡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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