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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똑똑한 과학자인 건 안다. 다만 내가 더 낫다뿐이지….'
천재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가 영화에서 그의 남편에게 한 말입니다. 퀴리 부인으로 잘 알려진 마리는 남편 피에르와 새로운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해 부부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죠.
퀴리 부인은 전쟁에서 다친 병사들을 위한 의료용 도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자신이 노벨상으로 받은 두 개의 순금 메달도 아낌없이 내놓는 애국자이기도 했습니다.
화학자인 독일 메르켈 총리 커플은 공(公)과 사(私)를 확실히 구분하는 거로 유명하죠. 남편 오아힘 자우어는 아내 취임식조차 자기 실험실에서 TV로 지켜볼 정도. 여행 갈 때도 아내 메르켈은 총리 전용기를 타지만, 남편은 저가 비행기를 타고 따로 갑니다.
어느 여당 의원이 국회 청문회에서 임혜숙 과학기술 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퀴리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라고 역성을 들었지요.
임혜숙 후보자 부부가 퀴리나 메르켈 커플과 마찬가지로 과학자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삶의 궤적이나 태도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쓴 논문 18편에 남편 이름을 버젓이 제1 저자로 올린 거나, 해외 출장 때 가족동반을 관행이라고 주장한 걸 보면 공(公)과 사(私)에 대한 분별력이 있나 의심스럽기까지 하죠.
직업공무원인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부부가 사들인 1250여 점의 도자기 사진이 신문에 나온 날엔, 신안 앞바다에서 또 보물선이 나온 줄 알았습니다. 밀수를 단속하는 해경청이 바로 해수부 장관 소속입니다.
특별공급을 받은 세종시 아파트를 실거주가 아닌 시세차익 목적으로 활용한 노형욱 후보자가 국토부 장관에 적임인지도 의문이고요. 일탈과 탈법에도 민심이 용인하는 수준의 상식이란 게 있고, 넘어서는 안 될 금도가 있습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 국민은 '이번만은 다르겠지' 하며 기대 섞인 '환상'에 들뜹니다. 하지만 곧 그들의 감춰진 진면목이 드러나 '환상'이 '환멸'로 바뀌는 데는 불과 며칠 걸리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의 가슴을 칼로 후비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주하의 '그런데' 환상과 환멸 사이였습니다.